얼마전 십년 넘게 사업을 하고 있는 동문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를 물어봤다. 대답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진다는 것이었다. 나도 몇년 사업을 하면서 비슷하게 생각했다. 잘되든 못되든 내가 판단해서 결정했고 그 책임도 내가 진다는 게 사업의 매력이다. 그 과정이 항상 어렵고 외로워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 자유의지라는 점이 끊을 수 없는 마약같기도 하다. 


문제는 사장은 그런 매력을 만끽하고 그 맛에 사업을 하지만, 정작 구성원들은 그런 매력을 느낄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좋은 사장이나 상사를 만나면 권한위임 차원에서 일부 결정권이 넘어오기는 하지만 중요한 의사 결정은 여전히 윗사람의 판단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내 행동의 방향과 행동 여부를 타인의 의지에 맡겨야 하고, 내가 이렇게 하고 싶고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즉 내 의지를 남에게 의탁하고 허락받아야 한다. 이것이 그 어떤 당근으로도 풀리지 않는 갈증의 근원이다. 


결정은 업무의 전제가 아니다.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재미있는 업무의 한 부분이다...그래서 모든 결정은 다 소중하며, 최대한 널리 분산되어야 한다. 의미있는 결정을 내릴수록, 그만큼 일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언리더십> 중에서)


보통 사장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놀면서도 문득 사업 아이템이 떠오르기도 하고,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회사에서 탈출했다거나 내일 회사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개그콘서트의 끝을 알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월요병이 도지는 게 아니라, 주말이 끝나고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구나 다음 주에는 뭘할까를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직원의 마음은 정반대이다. 온갖 회의와 보고, 상사나 부하와 갈등, 눈치보기, 사내 정치 등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이고 퇴근 후 집에 들어가도 편하게 쉬지 못한다. 짧은 휴일이 지나면 다시 그 전쟁터로 끌려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출처 : http://www.midasit.com/)


마이다스아이티, 제니퍼소프트, 고어, 구글, 모닝스타, 사우스웨스트항공 등 조직이 크든 작든 대안적인 조직 운영으로 주목받고 있고 성과를 창출하는 기업은 예외없이 책임과 권한을 나눠서 맡기지 않는다.  

사람이 머리는 없이 손발만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직을 사람으로 은유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사장이 머리고 직원이 손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사람이 아니라 아메바에 가깝고, 프랙탈 구조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존경받는 교세라 그룹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가 창안한 아메바 경영은 조직의 각 단위들이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조직으로서 자생력을 갖추도록 경영하는 기법이다. 일종의 독립채산제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책임뿐만 아니라 권한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독립채산제 경영을 도입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지만 뚜렷하게 대세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조직 경영 기법으로만 도입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런 경영기법은 기법 이전에 사람에 대한 신뢰, 그리고 노동은 밥벌이 수단이 아니라 정신을 고양하고 마음을 갈고 닦는 수양의 방법이라는 철학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행복거래 장터다.

회사는 행복생산 공장이다. 

사업은 행복거래 행위다. 

매출은 행복효용 총량이다. 

이익은 행복시너지 기반 재원이다. 

구성원은 핵심가치 추구자다. 

('마이다스' 메시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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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조직이나 허리가 강해야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덩치가 크다 하더라도 허리가 부실하면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다. 
아무리 사장이 똑똑하고 멀티플레이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 혼자서 모든 걸 도맡아 처리할 수는 없다. 직원이 몇명되지 않을 때는 사장이 주도적으로 모든 걸 끌고나가는 것이 필요하고 효율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규모가 점점 커질수록 실무는 담당자에게 위임하고 사장은 경영에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즉, 서서히 자신의 직급과 직책에 맞는 일을 나눠서 맡아가야 한다. 

문제는 직급/직책에 걸맞는 일을 맡거나 맡겨야 하는데 아직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안될 때이다. 반대로, 사장이나 윗사람이 보기에는 부하 직원에게 일을 넘겼을 때 자기가 하던 만큼의 처리 속도나 수준이 나오지 않아서 답답해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 꼴을 참지 못하고 결국 자기가 다시 일을 가져와버리고 부하 직원에게는 지시사항만 처리하게 하는 경우도 흔하다. 

어느 경우든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일은 일부 몇몇 사람에게 몰리고 효율은 떨어지며 조직 전체적으로는 지속적인 성과를 올리기가 쉽지 않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조직의 역량이 몇몇 핵심 인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다보니 조직은 약하고 개인의 힘만 커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십년을 넘게 일을 해도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을 기회는 많지 않다. 조직에서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도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임기응변과 경험, 스킬은 늘어나지만 질적 업그레이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현장에서 경험하고 배우는 다양한 업무들을 제대로 된 지식으로 정리하지는 못한다. 우물 안의 달인이 될 수는 있지만 자신만의 관점과 시각을 지닌 업무의 고수가 되지는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력직 사원을 충원하게 되면, 조직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 스타일에 조직을 맞출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 불신들이 자라난다. 

이것을 풀어나가는 첫 단추는 어쩌면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다. 
직원이 들어오면 간단한 OT부터 하자. 대기업처럼 몇박 몇일짜리 연수를 할 수는 없지만, 며칠, 아니 하루라도 시간을 비워서 입사한 직원에게 교육을 진행하는 게 좋다. 기업의 비전, 사명, 인재상처럼 기업문화와 관련된 것들은 입사 초기에 제대로 공유하는 게 좋다.  그리고, 주요 사업분야와 제품, 조직도와 담당 업무, 결의서나 기안서 쓰는 법 같은 실무적인 것까지 쭉 알려줘서 조직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리고, 기획, 인사, 마케팅, 개발, 영업 같은 업무별 직무교육이나, 팀장, 부장, 임원 등 직급/직책별 교육도 필요하다. 한달짜리 연수를 말하는 게 아니라 하루 몇시간짜리, 또는 일주일짜리 온라인 교육도 좋다.  
여기서 우선 순위를 굳이 정하라고 한다면, 회사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팀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역량 강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목표는 당장 실무에 써먹을 수 있는 것을 배우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닫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른다는 걸 알아야 스스로 알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업무 역량도 올라가고, 자신의 위치와 직무에 걸맞게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회사에서 교육을 안시켜준다고 불만스러워 하는 직원도 문제지만, 그런 교육에 들일 시간과 비용이 아깝다고 여기는 경영자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을 핵심 자원이 아니라 비용으로 본다면 당장 아웃풋이 보이지 않는 교육에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한 매우 빡빡한 인력 구성으로 하루벌어 하루 먹고사는 중소기업 처지에서 역량 계발을 위해서 따로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는 게 말처럼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좀더 여유가 있을 때 하자며 뒤로 미루게 되지만, 막상 여유가 생기는 때가 오더라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즉, 이것은 상황이나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고 습관이고 문화다. 

가뜩이나 직급 인플레가 심한 중소기업에서는 직급과 실제 역량 사이의 괴리를 최대한 줄여나가는 것이 조직과 구성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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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어느 정도 업력이 쌓이고 안정적으로 매출이 일어나게 되고 인원도 이제 몇십명 수준으로 늘어나게 되면 여러가지 제도들을 검토하고 도입하게 된다.


앞서 KPI와 같은 성과평가 제도의 도입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런 제도만 도입하는 것으로는 애초 의도했던 목적이나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표 그 자체에 매몰되거나 부서간, 개인간 갈등이나 불만만 더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도를 도입한다고 그 자체가 알아서 굴러갈 리는 없다. 사소한 규칙 하나가 생기거나 없어지더라도 한동안은 관성에 따라 변경 전의 규칙이 그대로 유지된다. 하물며 전사적으로 적용되는 시스템이나 프로세스가 생기는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모든 변화는 익숙한 습관을 유지하려는 관성이라는 저항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제도를 실행해야 하는 조직과 사람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령 KPI같은 성과 평가 제도 도입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소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고 일정 궤도에 올라섰다는 판단이 들자 사장이나 임원진에서는 이제 우리 회사도 '공정한 성과관리'를 통해 개인의 역량과 성과를 끌어올리자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외부 경영컨설팅 기관에게 제도 도입을 위해 컨설팅을 의뢰한다. 기관에서는 몇 차례의 면담과 질문지 배포와 수거, 업무 분석을 통해 부서별, 팀별 업무를 분류, 정리한다. 그리고 각 부서별로 주요 핵심 업무를 정리하고 일정한 양식에 맞춰서 연간 업무 목표와 지표를 수립할 것을 요구한다. 몇달간의 업무 분석과 목표 설정, 지표 수립이 끝나고, 이와 관련된 실무적인 운영 방침과 규칙, 성과 보상 정책 등도 함께 따라온다.


나는 이 과정이 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든 BOTTOM-UP 방식으로 진행되든지와 상관없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제도는 굴러가겠지만 매우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애초 의도했던 역량 계발이나 성과 향상이라는 목표는 거두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해당 조직의 구성원들이 평가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사장을 비롯해 각 부서나 팀의 책임자(임원, 부서장, 팀장)들이 자기가 맡은 조직의 달성 과제와 목표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팀원들도 자신이 올 한해 달성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그 목표 달성 여부를 무엇으로 수치화 할 것인지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매우 낯설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그냥 회사 전체가 한몸처럼 움직였고, 회사의 목표가 곧 부서의 목표, 나의 목표였으며, 도전 과제가 있으면 너 나 가리지 않고 함께 넘어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날 갑자기 부서, 팀, 개인이라는 단위별로 목표를 세우고 측정 지표를 만들라는 요구는 매우 낯설고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물론 조직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나 체질 개선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제도라는 형식만 들고 와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충분한 훈련이 필요하다.

이 훈련은 제도 도입을 논의하면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도입 전 적어도 일년 정도 기간을 두고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 훈련은 위에서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팀의 리더가 목표나 성과에 대해 감을 못잡는 데 아무리 팀원이 날고긴다해도 제대로 된 결과를 내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Plan-Do-Check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간부급부터 목표 설정, 실행, 교정, 업무 평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런 준비 과정에서 우리 조직이 현재 어느 정도 수준의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성과 평가 제도의 도입 여부나 시기, 보강해야 할 부분 등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중소기업은 체계적인 직원 교육 시스템도 없을 뿐더러 그런 걸 경험하고 입사하는 직원도 흔치 않기 때문에 이런 준비와 훈련, 경험의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


정말 구체적이거나 절실하게 필요해서가 아니라면, 의례적으로 따라하는 제도 도입은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받아야 할 컨설팅은 업무 분석이나 성과 지표 수립 같은 구체적인 제도가 아니라, 간부급이 갖춰야 할 리더십, 직급/업무 역량 계발, 멘토링 역량 수립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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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 성장하면서 굳이 대기업을 따라하지 않아도 되는 데 따라하는 게 하나 있다면 성과측정지표가 아닐까 싶다. 이른바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MBO나 BSC(Balanced Scorecard) 등의 성과 중심의 경영방식과 함께 구체적으로 성과를 관리하기 위해 KPI를 도입해서 운영한다. 주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성과 평가와 보상을 위해서 도입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런 평가지표는 최선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거라도 있어야 하기에 도입하는 차선에 가깝다. 정말 이런 평가 지표 자체가 개개인의 업무 성과를 제대로 반영한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나도 회사에 있을 때 KPI란 것을 도입해볼 생각으로 검토해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느낀 이 평가 방법의 가장 큰 한계는, 앞으로 진행하거나 일어날 일들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지금까지 해 온 업무를 토대로 미래의 업무를 예측하고 성과 지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런 ‘근자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 방식까지 도입한다면 볼 만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해 운영해보고 보완 사항이 있으면 다시 추가해서 반영하겠지만 결국은 사후약방문이며, 자신의 성과와 기여가 정당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은 남게 된다. 
무엇보다 이런 사전 지표 수립은 끊임없이 조직이 바뀌고, 새로운 업무와 사업이 추가되고,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진행하거나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조직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고 부작용만 생긴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중소기업이다. 
가장 흔한 경우가 KPI에 반영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실제로 지인이 다니고 있는 회사는 15년 이상의 업력과 직원이 100명이 훨씬 넘는 IT 기업이다. 그 분의 고충 중의 하나가 업무 협조받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타 부서의 도움이 필요해서 요청하면 일단 KPI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내부영업’으로 구워 삶아서 도움을 받거나 담당자의 선의에 기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을 잘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만든 것이 KPI같은 평가지표인데, 거꾸로 KPI를 맞추기 위해서 일을 하는 꼴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KPI만 달성했다고 성과가 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 
KPI를 담당자 본인이 직접 만들게 해도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 KPI가 도전적인 목표인지 적당하게 설정한 것인지 판단은 누가 할 것인가? 그 판단이 맞다는 건 또 누가 보증할 것인가? 더 큰 문제는 KPI에 들어 있지 않은 신사업 등의 업무가 생기게 되면 그때마다 KPI를 수정할 것인가? 일년 안에 답이 나오지 않는 사업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하는가? 
물론 이런 문제를 지표 설정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해서 문제를 최소화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이 주제는 다음 번에 언급하겠다)

KPI로 표현되는 성과관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세우고 지표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계획, 실행, 평가의 전 과정이 제대로 굴러가야만 가능하다. 
문제는, 보통의 중소기업에는 그런 프로세스 자체가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제도만 도입해서는 소기의 목적을 거두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냥 돈쓰고 시간쓰고 힘만 빼고 분란만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성장하는 중소기업에서 사전 준비없이 KPI를 도입하는 건 조직을 경화시키고 안전 위주의 업무 태도를 불러올 위험성이 매우 높다. 즉, 부서간 칸막이가 높아지고 부서 이기주의로 흐르게 되는 이른바 ‘조직의 사일로 효과(organizational silos effect)’를 불러와 업무 효율과 성과를 저해하고 조직문화를 해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KPI가 어떤 경우에도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세월이 흘러도 업무에 별로 변화가 없거나 단순 반복 업무, 또는 공장의 생산라인처럼 정해진 제품을 생산하는 분야 등의 경우에는 KPI나 성과급 보상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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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멤버, 그 어려운 관계>

"어떤 나그네가 긴 여행 끝에 크고 넓은 강에 이르렀다.
강 너머는 평화롭고 아늑한 땅이 있었다.
나그네는 강을 건너기 위하여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나룻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갈대와 나뭇가지를 꺾어 뗏목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공들여 뗏목을 만든 다음 그것을 타고 무사히 강을 건넜다.
평화롭고 아늑한 땅에 도착한 나그네는 자신이 건너온 강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이 뗏목이 아니었다면 강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 이 뗏목이야말로
내게 큰 은혜를 베풀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자신이 타고 온 뗏목이 아깝게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무겁고 커다란 뗏목을 가져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그네는 무거운 뗏목을 어깨에 메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모두 비웃었다."
- <증아함경>

금강경에 나오는 저 비유가 창업 멤버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허름한 사무실, 좁은 오피스텔에서 서너명이 의기투합해서, 밥 대신 꿈을 먹고 돈 대신 에너지를 받으며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매출이 늘고 직원도 늘어난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더 흐르고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규모를 갖춘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고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접어드는 때가 온다. 그리고 그때쯤, 또는 이미 그 전 쯤에 전형적인 문제 하나가 생긴다. 
사장에게는 괴로움과 난감함, 직원에게는 불만으로 다가오는 문제. 바로 창업 멤버의 능력과 역량에 대한 문제이다. 

물론 창업 초창기 멤버들이 조직의 성장과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반면 조직은 성장했는데 창업 멤버들은 초기 업무 역량에서 크게 올라가지 못하고 맴도는 경우도 많이 있다. 초창기에는 보통 영업적 필요로 전 사원의 간부화, 임원화가 일어난다. 대부분 팀장, 부장, 이사 등의 직급을 달게 된다. 어쩔 수 없기도 하고 필요하기도 하다. 내용은 없지만 타이틀이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직이 커지게 되면 타이틀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그러길 기대하는 때가 오는 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이다. 
창업 멤버라는 프리미엄 덕에 임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임원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필요한 역량이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덧 매너리즘에 젖어 들고 업무는 관성적으로 수행한다. 
아래로는 똑똑한 직원들이 들어오는 데 정작 임원은 그들을 리드하기는 커녕 쫓아가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 벌어진다. 어느 순간, 초창기 멤버들이 조직 발전의 걸림돌이나 병목 현상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기 시작한다. 
더 큰 비극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은 다 아는 데 당사자만 모른다는 점이다. 

자리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고, 자세의 문제일 수도 있고, 기업 문화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타이틀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계속 그 조직에서 함께 하기는 매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해법은 있는 그대로 그 사실을 알려주고, 다시 창업 초기의 열정과 자세를 떠올리며 노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거나, 노력하더라도 한계가 보인다면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서로를 위해서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좋을 때 헤어지는 게 그마나 마음이 덜 상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조직이 어려운 상황이 되어서야 그동안 쌓였던 불만과 비난을 쏟아내 봤자 나아질 건 하나도 없다. 

당사자에게는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조직은 그동안 동맥경화로 고생했던 문제를 해결하며 미래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다. 
물론 본의아니게 조직을 떠나는 창업 멤버의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만, 최대한 예우를 갖춰서 그 마음을 달래주고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강을 건너게 해 준 고마운 뗏목이지만, 뗏목을 어깨에 이고 갈 수는 없다. 뗏목이 필요한 강가로 찾아갈 수 있도록 내려놓거나, 뗏목을 해체해 길을 헤쳐가는 용도로 재구성해야 한다. 
여기서 사장의 결단과 냉정함이 요구된다.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지에 대한 미안함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으로 곪게 놔두는 건 사장으로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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