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 상식은 회사는 시장에서 고객의 관심을 얻고 제품을 팔아서 수익을 내기 위해 치열하게 일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막상 내부로 들어가보면 직원들이 고객과 시장을 바라보는 것보다 윗사람의 심기를 헤아리고 비위를 맞추는 것에 더 열심인 곳이 많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런 조직의 오너 또는 사장의 성향은 매우 권위적이며, 까라면 까는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를 좋아한다.
따라서, 밖에서 보기엔 도대체 저런 삽질을 왜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제품을 개발하거나 병맛 마케팅의 배후엔 그 회사의 이상한 조직 문화가 사전에 문제를 걸러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윤을 내는 게 기업 차원에서는 필요조건이지만,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에겐 회사에서 밉보이지 않고 인정도 받고 승진도 하고 오래다니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 조직에서는 시장 동향이나 타겟 고객의 성향은 후순위일 뿐이고, 사장이나 상사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제품을 밀고 싶어하는지, 어느 인맥이 더 빵빵한지가 우선적인 관심사다. 그러다보면 부서 이기주의는 물론이고, 회사 차원의 성장이나 손익에 악영향을 끼치는 자해 행위까지도 기꺼이, '치열하게' 벌인다.
그 조직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어이없고 한심한 행동이지만, 막상 그 안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절박하고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내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고객이 아니라 사장이나 상사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한테 잘보이는 것이 내 생존에는 훨씬 더 유리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품이 경쟁력이 있든 없든, 고객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책임 소재는 애매하게 흐려버릴 수도 있고 남한테 전가할 수도 있지만, 윗사람에 찍히면 당장 조직 생활이 팍팍해지고 생계의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100명짜리 중소기업에서도 이런 현상은 나타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매출을 안정적으로 올리고 있는 회사로 갈수록 외부보다 내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생존이라는 절박함에서는 일단 벗어났고, 도전하고 혁신하는 문화가 서서히 약해지면서 사내 정치가 독버섯처럼 퍼진다.
그리고, 그런 충성 경쟁을 은근히 즐기는 사장의 성향이 이런 경향을 부채질하며, 더 정확하게는 이런 성향이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유유상종. 결국 그런 조직에 적응하는 사람, 그런 문화가 좋은 사람이 조직의 대다수를 이루게 된다.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무서운 게 아니라 회장님의 심기를 살피고 문제를 어떻게든 꼼수로 덮으려고 했던 남양유업의 모습을 보라.
자신이 사장이라면, 사장인 나는 잘하고 있는 것 같고 직원들도 내가 시킨 대로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혹시 내가 문제의 원인이 아닐까 하는 자문을 습관적으로 해보기 바란다.
물론 시장경기, 경쟁, 트렌드 같은 기업 외부 상황 탓일 수도 있고 아이템 선정, 전략 수립의 부족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조차도 자유롭고 창의적인 의사 교류와 협력의 조직문화가 부족한 탓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문화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사장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공무원들의 모습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국민의 공복으로서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 오로지 이 사건이 자신에게 미칠 피해나 책임을 회피하는 데 열심인 모습, 국민에게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장관, 대통령 따위 윗사람의 심기를 먼저 살피는 모습은 실력이 아니라 개인적인 인연과 충성도를 우선시하는 대통령의 성향이 불러온 결과이다. 그리고, 이것이 위기대응 시스템 자체가 재난 수준의 바닥까지 내려가게 하고, '이것도 나라냐'는 분노와 한탄이 나오게 한 이유다.
해결책?
솔직히 비관적이다.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주체가 바로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기업문화를 바꾸고 리더의 성향에 좌우되지 않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굳건한 의지와 꾸준한 노력, 그것을 실현할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애초 창업 초창기에 명확하게 기업의 철학과 사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극적인 예가 일본항공(JAL)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1차 파산으로 벼랑끝까지 몰린 JAL에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아니모리 가즈오가 구원투수로 등장하여 불과 1년 만에 흑자 전환, 2년 8개월만에 주식시장 재상장이라는 기적같은 결과를 보여줬다. JAL이 파산까지 몰리게 된 이유와 그것을 다시 일으켜 세워 재생해낼 수 있는 방법이 모두 이 기업의 파산과 회생 과정에 농축되어 있다. 사내 정치, 보신주의, 부서 이기주의 등.
결국 경영진을 갈아치우고,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과 단절하는 브레인워싱 과정을 꾸준히 진행하고,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가지고 주체적으로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내기 위해 전력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내 회사는, 그럴 용기와 의지와 주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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