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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28 밥이냐 윤리냐
인생이나 사업이나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라는 점은 비슷한 것 같다. 때론 현실과 타협하기도 하고 때론 아깝지만 원칙을 지키기 위해 눈앞의 이익을 버리기도 한다. 
사업을 하다보면 조직의 윤리적 기준선을 어디까지 올리고 내려야 할 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윤리적 기업문화가 갖춰진 기업일 수록 구성원들의 소속감이나 만족도도 높고 성과도 상대적으로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하는 윤리적이고 모범적인 회사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갖고 회사를 경영한다. 
하지만, 윤리라는 게 법이나 상식처럼 정해진  기준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기업마다 그 기준이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다. 
대기업은 만원 이상 식사 대접이나 명절 선물은 절대 받지 못하도록 윤리규정을 만든 곳이 많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오히려 그 정도는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나 용인 가능한 수준이라고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가령, 정가 1천만원짜리 솔루션이 있다 치자. 정가는 말그대로 '희망' 가격일 뿐, 경쟁과 입찰이라는 피튀기는 현장에서는 보통 절반값, 심한 경우에는 90%를 할인해서 팔기도 한다. 그런데, 영업사원이 착한(?) 고객을 만나 이 솔루션을 2천만원에 팔았다면 또는 팔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능력있는 직원이라 칭찬해야 하나, 고객을 속여 폭리를 취한 비윤리적 행위로 경고를 줘야 하나? 
거기다 아직 사업 초창기라 당장 그 달 벌어 그 달 월급주기도 빠듯한 상황이라면 말이다. 1천만원짜리를 백만원에 파는 게 문제가 안된다면 2천만원이든 1억원이든 비싸게 파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2000년대 초창기에 SW 정보제공 사이트를 운영할 때였다. 
지금과 달리 그때까지만 해도 컴퓨터를 사면 여러가지 SW를 설치하고 각종 유틸리티 정보를 얻기 위해 이런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용자가 꽤 많았다. 덕분에 일 방문자나 트래픽이 준포털급 수준이었다.
하지만 마땅한 수익모델이랄 게 없어서 10여명 안팎의 직원들 월급 주기에도 빠듯했고, 부족한 돈은 빚을 내서 메우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컨텐츠 유료화, 온라인 쇼핑몰, 유료 ASP 등 수익이 될 만한 아이템들을 찾아서 여러 시도들을 해봤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때 핫 아이템으로 떠오르던 게 P2P 서비스였다. 주로 SW와 야동 공유를 중심으로 수익을 내고 있었고, 법적인 규제나 관심을 많이 받지도 않을 때였다. 서비스를 붙이기만 해도 최소 하루 천만원 매출은 기본이라는 얘기가 돌 때였다. 
내게도 이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제의가 들어 왔다. 내가 운영하던 사이트의 성격과 P2P는 매우 잘 맞아 떨어지는 조합이었다. 최소 월 수 억의 매출과 상당한 순익을 남길 수 있다는 건 굳이 설명이 필요없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그런 제안이나 수익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SW를 핵심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무단으로 SW를 불법복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게 기업 윤리 차원에서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을 접고 수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가끔씩 그때의 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원칙을 지키며 장렬(?)하게 전사한 결과만 놓고 본다면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사업 능력의 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이자 한계였던 걸 그런 편법으로 회피하는 게 옳았겠느냐는 위안과 반성도 한다. 또는 적당한 타협책으로 P2P 서비스는 제공하되 SW 공유만 막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박봉의 월급도 어떤 달에는 며칠 밀리기도 하고, 그마저도 부족해서 빚을 내면서 개인적으로도 어려웠던 상황에서, 사장으로서 내가 지켰던 그 윤리적 기준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냐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때 그 판단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만약 앞으로 다시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 지 궁금하다. 그렇지만, 원칙이나 윤리, 도덕이란 게 편할 때는 지키고 어려울 때는 슬쩍 어겨도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은 한다. 오히려 어려울 수록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배고프다고 도둑질을 하는 게 옳거나 합리적인 행동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오늘 지키지 못하면 내일도 지킬 수 없고, 능력 부족을 편법으로 해결하면 이후에도 능력으로 뭔가를 이루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윤리나 도덕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당장 영향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쉽게 타협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그렇기에 한번 훼손된 정신은 다시 복구하기가 힘들다. 







Posted by 티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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