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책으로 쌓을 수 있지만, 경험은 세월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겪어야만 얻을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점은, 살면서 겪는 온갖 경험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어우러져 이른바 연륜과 영감을 더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장자를 대우하는 것은 시간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머리가 좋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의사 결정을 꼭 그 사람이 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반대로 명석한 두뇌로 젊은 나이에 MBA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그 사람이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냥 못 배운 사람이나 경험이 짧은 사람보다야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의사 결정이 소수에게 집중되거나 그 사람의 동의를 거쳐야만 하는 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그 사람에게만 있다는 가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무자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상급자의 결재를 받는다는 점은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핵심은 '경영자의 종말'이 아니라 '경영의 종말'이다. 경영자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리더의 역할은 직원들의 사고가 시장과의 연결 고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기업의 원칙과 가치를 온전하게 유지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리더의 일이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언리더십> 중에서)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듯이 결재권자가 되기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다.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성과를 내며 조직과 나의 성장이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한 직장이다. 
각자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근속연수가 오래되고 창업멤버이기 때문에 임원을 하는 것은 개인에게나 조직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높은 직급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이 오랫동안 조직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에 대한 인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정은 인정에서 그쳐야 한다. 


오랜 기간 쌓은 경험과 그 사람이 온몸으로 체득한 노하우와 역사는 더 나은 판단을 위해서 매우 소중하게 쓰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재판 맨 끝에 사인을 하는 것이나, 고독하게 혼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행위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보지 못하는 숲을 보여주거나, 어디로 헤쳐나가야 할지 모를 때 나침반의 역할로서 필요하다.
 
고참의 역할은 결정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판단을 도와주는 근거나 조언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실무자를 믿고 맡기는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실무자는 자신의 판단에서 부족한 점이 없는지 기꺼이 조언을 얻고 모르는 것은 묻고 의심하는 것은 토론하면서 답을 찾아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각자의 장점과 능력이 최대로 발휘되고, 더 나은 실력을 쌓기 위한 자극이 되고, 일이 힘겨운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는 과정이 되고, 우수한 성과로서 그 결과를 인정받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다. 

따라서, 기업 운영에서 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은 효과적인 결재 프로세스나 R&R 정리가 아니라, 각자의 역할과 장점을 결합하고, 개인의 독주나 판단 착오를 막으면서 한 뜻으로 마음을 모아서 결정할 수 있는 자기 조직 고유의 의사 토론과 결정 방법을 만드는 것이다.

" '어떻게 해야 직원들이 조직에 더 기여할 수 있을까?'라고 묻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직원들의 뛰어난 재능을 얻을 만한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관리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직원들에게 헌신적인 노력을 고무하는 근무 환경, 상상력과 독창성을 발휘하며 열정을 쏟을 만한 가치가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 (게리 하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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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직원이 잘못하면 징계를 내리겠지만 임원이 잘못하면 누가 제어하는가? 사장밖에 없다. 사장이 바빠서 그런 걸 일일이 체크하지 못한다면? 배가 산으로 서서히 올라간다. 

막힌 조직이라면 누구나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거나 산에 이미 올라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봤자 돌아오는 건 험담, 냉소, 비난 뿐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지만 사장이나 임원만 모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원은 더욱 신중하게 뽑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는 건 절반만 맞다. 임원은 특권이 아니라 높은 인성과 풍부한 경험, 우수한 성과를 거둔 사람임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그만큼의 지식과 경험, 인격적인 성숙, 넓고 깊은 안목을 기대하는 것이다. 자기도 잘 모르는 업무를 결재하는 자리도 아니고, 떠받듬을 즐길 수 있어 좋은 것도 아니고 조직의 운명을 혼자서 감당하는 엄청난 부담감에 짓눌리는 자리도 아니다. 




직급이 높을수록, 현장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책임과 권한이 더욱 커지는 일반적인 조직구성은 거꾸로 된 구성이다. 대부분의 판단과 결정은 현장과 밀접한 현업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적어도 현업에서는 동료들끼리 바로 옆에서 판단의 옳고 그름과 효과와 성과에 대해 검증할 수가 있고,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결재와 보고라인이 항상 밑에서 위로만 향하고, 권한도 위로 올라갈수록 커지게 구성돼 있는 것은, 하부에서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상부에서 검토해서 결정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과 부하 직원은 관리를 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 대리가 만든 기획안은 과장, 팀장, 부서장이라는 검증절차를 거쳐야 한다.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는 저 연어들과 비슷하고, 21세기를 사는 청소년의 기획안을 20세기를 산 교사한테 검토를 맡고, 19세기 마인드를 간직하고 있는 교장한테 최종 허가를 받는 식과 비슷하다. 


물론 중소기업에서 임원과 직원의 괴리는 대기업처럼 그리 크지 않다. 비슷한 또래로 비슷한 감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충분히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지가 많고, 실제로 창업초기에는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활기차게 조직이 돌아간다. 문제는 조직이 수십명 단위를 이루고 백여명 규모까지 커지게 되면 급격하게, 또는 서서히 이런 장점이 사라지고 조직이 경화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실무진의 의견을 상사가 검토하는 것과 결정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지식과 경험이 많은 선임자가 후임자의 업무를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고 그것이 선임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일단 전투에 들어가면 전투를 벌이는 당사자가 승리를 위해 순간적인 판단과 대응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때마다 상사에게 총을 쏠지, 수류탄을 던질지, 후퇴할지 전진할지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다. 

현업에서 벌이는 일은 이미 많은 동료들과 위아래 구성원들을 통해 검토하고 검증할 수 있다.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품의나 결재라는 좁디좁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런 검토와 검증의 기회, 부족한 점을 보강하고 장점을 강화할 기회는 확 줄어든다.  


예를 들어, 누군가 좋은 신제품 개발을 기획했다치자. 기존 수직 체계에서는 신제품 개발 정도의 아이템이라면 팀장을 거쳐 부서장, 임원, 사장까지 차곡차곡 결재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애초 기획 의도대로 그 아이템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기획안이 통과되었다 하더라고 부서간 협의라는 만만찮게 어려운 과정이 또 남아 있다. 

미식축구의 쿼터백처럼 온갖 방해를 뚫고 백번 시도에 한번 겨우 터치다운에 성공할까 말까하다. 왜 그래야 하는가? 옳은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결재를 위한 결재가 목적이 되는 느낌이 든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의욕에 불타는 직원이라 할지라도 굳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위해서 나설 이유나 동기를 찾기 어렵게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권한이 집중되는 지금의 수직적 체계를 수평으로 늘어뜨려 분산시켜야 한다. 각각의 업무에 대한 결정을 현장 담당 부서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정을 위에서 하면 할 수록 현업의 책임감은 그에 반비례해서 낮아진다. 

내가 결정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내가 일을 하지만 내가 결정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일을 주체적으로,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 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일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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