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직원이 잘못하면 징계를 내리겠지만 임원이 잘못하면 누가 제어하는가? 사장밖에 없다. 사장이 바빠서 그런 걸 일일이 체크하지 못한다면? 배가 산으로 서서히 올라간다. 

막힌 조직이라면 누구나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거나 산에 이미 올라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봤자 돌아오는 건 험담, 냉소, 비난 뿐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지만 사장이나 임원만 모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원은 더욱 신중하게 뽑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는 건 절반만 맞다. 임원은 특권이 아니라 높은 인성과 풍부한 경험, 우수한 성과를 거둔 사람임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그만큼의 지식과 경험, 인격적인 성숙, 넓고 깊은 안목을 기대하는 것이다. 자기도 잘 모르는 업무를 결재하는 자리도 아니고, 떠받듬을 즐길 수 있어 좋은 것도 아니고 조직의 운명을 혼자서 감당하는 엄청난 부담감에 짓눌리는 자리도 아니다. 




직급이 높을수록, 현장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책임과 권한이 더욱 커지는 일반적인 조직구성은 거꾸로 된 구성이다. 대부분의 판단과 결정은 현장과 밀접한 현업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적어도 현업에서는 동료들끼리 바로 옆에서 판단의 옳고 그름과 효과와 성과에 대해 검증할 수가 있고,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결재와 보고라인이 항상 밑에서 위로만 향하고, 권한도 위로 올라갈수록 커지게 구성돼 있는 것은, 하부에서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상부에서 검토해서 결정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과 부하 직원은 관리를 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 대리가 만든 기획안은 과장, 팀장, 부서장이라는 검증절차를 거쳐야 한다.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는 저 연어들과 비슷하고, 21세기를 사는 청소년의 기획안을 20세기를 산 교사한테 검토를 맡고, 19세기 마인드를 간직하고 있는 교장한테 최종 허가를 받는 식과 비슷하다. 


물론 중소기업에서 임원과 직원의 괴리는 대기업처럼 그리 크지 않다. 비슷한 또래로 비슷한 감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충분히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지가 많고, 실제로 창업초기에는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활기차게 조직이 돌아간다. 문제는 조직이 수십명 단위를 이루고 백여명 규모까지 커지게 되면 급격하게, 또는 서서히 이런 장점이 사라지고 조직이 경화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실무진의 의견을 상사가 검토하는 것과 결정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지식과 경험이 많은 선임자가 후임자의 업무를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고 그것이 선임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일단 전투에 들어가면 전투를 벌이는 당사자가 승리를 위해 순간적인 판단과 대응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때마다 상사에게 총을 쏠지, 수류탄을 던질지, 후퇴할지 전진할지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다. 

현업에서 벌이는 일은 이미 많은 동료들과 위아래 구성원들을 통해 검토하고 검증할 수 있다.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품의나 결재라는 좁디좁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런 검토와 검증의 기회, 부족한 점을 보강하고 장점을 강화할 기회는 확 줄어든다.  


예를 들어, 누군가 좋은 신제품 개발을 기획했다치자. 기존 수직 체계에서는 신제품 개발 정도의 아이템이라면 팀장을 거쳐 부서장, 임원, 사장까지 차곡차곡 결재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애초 기획 의도대로 그 아이템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기획안이 통과되었다 하더라고 부서간 협의라는 만만찮게 어려운 과정이 또 남아 있다. 

미식축구의 쿼터백처럼 온갖 방해를 뚫고 백번 시도에 한번 겨우 터치다운에 성공할까 말까하다. 왜 그래야 하는가? 옳은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결재를 위한 결재가 목적이 되는 느낌이 든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의욕에 불타는 직원이라 할지라도 굳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위해서 나설 이유나 동기를 찾기 어렵게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권한이 집중되는 지금의 수직적 체계를 수평으로 늘어뜨려 분산시켜야 한다. 각각의 업무에 대한 결정을 현장 담당 부서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정을 위에서 하면 할 수록 현업의 책임감은 그에 반비례해서 낮아진다. 

내가 결정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내가 일을 하지만 내가 결정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일을 주체적으로,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 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일을 할 뿐이다. 



Posted by 티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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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끊임없이 뛰어난 리더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한 사람이 만명을 먹여살리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잠재력을 갖춘 인재를 발굴하거나 영입해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렇게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할 수록 조직의 역동성과 자발성은 점점 떨어진다. 
한 사람의 카리스마, 재능에 기댄 조직은 아무리 지금 훌륭한 성과를 내더라도 지속성을 장담할 수 없다. 언젠가 그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나게 되고, 누구도 그런 사람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리더가 중요하기 때문에 능력있는 사람을 간부로, 임원으로, 사장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권한을 리더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것은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더는 결정이 아니라 궁극적인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적인 역할이다. 전쟁의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핵심이지 개별 전투에서 어떻게 싸울지 일일이 보고 받고 간섭하고 지시하는 역할이 아니다. 


일을 하는 이유를 안다는 것은 그 일의 의미를 알고 목적을 안다는 뜻이다. 따라서, 왜 그 일을 하는지(Why)가 분명하다면, 무엇을(What) 어떻게(How)할 지는 담당자가 스스로 판단해서 진행하면 된다. 리더가 관리할 지점은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일일이 검토하고 지시하는 것은 리더가 할 일이 아니다.  
감도 안 잡히는 신기술 개발을 추진할지 말지 고민하지 말고, 그 기술 개발이 과연 성과가 있을지를 따질 때 실무자가 빠뜨리거나 보지 못한 점이 없는지를 체크해주는 게 리더가 할 역할이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훌륭한 리더는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더 많은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능력을 결집해서 하나로 모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축구팀이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가면서 한때 '히딩크 리더십'이 크게 유행했었다. 인맥 학맥이 아니라 실력에 따라 선수를 선발하고 선후배 위계질서를 깨뜨려서 수평적인 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뻥 축구가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생각있는 축구를 도입했고, 감독의 작전을 수행할 기초체력을 쌓는 것에 충실했다. 
선수들이 팀웍을 이루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줬고, 현실에 만족하거나 지레 포기하지 않도록 '여전히 배고프다'고 했다. 
판을 읽고 흐름을 타고 선수 개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 이것이 리더의 할 일임을 히딩크는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 

즉, 리더는 감독이지 선수가 아니다. 선수의 플레이가 마음에 안든다고 대신 경기장에 뛰어들 수는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의외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 리더가 매우 많다. 그리고, 그것이 리더가 할 일이라고 착각하는 분들도 많은 듯 하다. 



Posted by 티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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