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지도 반년이 넘어가면서 여기저기 어려워지는 기업들의 구조조정 소식이 연이어 들려온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경험이 낯설기도 하고 두렵고 불안할 것도 같다. 

나처럼 20여 년전, 20세기말부터 불어닥쳤던 이른바 인터넷 열풍의 한가운데에 있다가, IT버블이 터지면서 하루아침에 많은 IT기업들이 망해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제일 크게 다가온 건 당황스러움이다. 

벤처투자라는 새로운 용어, 투자경험도 없는 이들이 VC를 만들고 투자하면서 여기저기 인터넷이란 단어가 들어간 사업계획서만으로도 손쉽게 투자를 받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실체도 없는 사업을 포장해서 남의 돈으로 사무실을 꾸미고 개인적인 호사를 누리는 데 낭비하고 네트워크에 집중하며 허명만 쌓아올렸던 이들도 많았다. 

한편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새로운 아이템으로 서비스를 만들고 시장을 만들고 진입하기 위해 애쓰다가, 하루아침에 180도 달라진 시장환경에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기업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엄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기업도 있다. 네이버, 한게임, 인터파크, 다음 처럼 

 

"물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고 있는지 드러난나"

"태풍이 불면 돼지도 난다" 

 

순식간에 시장이 얼어붙자 가장 먼저 투자기관들은 투자를 중지했다. 투자를 받아달라고 사정하던 입장에서 순식간에 투자동결로 바뀐 것이다. 

그러곤, 내실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전까지는 돈을 태워 사용자를 모으고 트래픽을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익모델은 그렇게 모은 회원과 트래픽을 활용하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하등 의문이 없었을까? 

 

20년 전에도 그랬다. 이른바 3C를 얘기하며, 우선 컨텐츠와 커뮤니티, 커머스가 세 축이며, 이를 위해서는 회원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금을 뿌려가며 가입 이벤트를 여기저기서 벌였다. 카드 만들면 사은품을 주던 카드사 마케팅과 별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터져버린 인터넷 거품. 그 이후 긴 겨울이 이어졌다. 

 

지금이나 그때나 왜 비슷한 모습으로 재연되는지 황당과 한심을 오가는 기분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특성상 경기 순환 사이클이 오는 건 불가항력이라지만, 현재의 상황은 단지 그런 체제의 구조적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이런저런 얘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칭찬은 고래나 춤추게 한다?  (0) 2014.05.20
사고는 다시 일어난다  (0) 2014.04.17
중소기업의 성공을 응원하며  (0) 2014.02.05
Posted by 티나게
,






십 여년 전에 나온 이 책은 비판보다는 칭찬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강조하면서 국내에서도 칭찬 신드롬을 일으켰다. 연예 프로그램에 '칭찬합시다'는 코너도 생기고, 기업마다 하루에 한명씩 칭찬 릴레이를 벌이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되고, 어쩌면 애초에 귤이 아니라 탱자가 그대로 넘어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징벌보다 칭찬과 격려를 하라는 것은, 칭찬을 통해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그 전제가 양날의 칼일 수도 있는 것은, 칭찬이라는 행위를 단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해할 때이다. 

책에서 지은이가 감명을 받은 범고래 쇼가 가능했던 것은, 조련사가 범고래를 단지 쇼를 위한 도구로만 보지 않았고, 범고래를 생명체로서 존중하며 성장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단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으로서 칭찬을 활용했다면 그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칭찬의 기본은 결과 이전에 과정이고, 사람에 대한 존중과 육성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관이 깔려 있어야 한다. 
주주 이익의 극대화, 제로섬 형태의 사내 경쟁, 엄격한 상명하달, 윗사람 눈치보기, 사내정치 등의 기업 문화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 상황에서 칭찬 릴레이나 캠페인은 잠깐의 진통제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그런 환경에서 칭찬 릴레이는 해야 하니까 하는 '업무'가 될 뿐이다. 

한때 육아, 교육 분야에서도 이 칭찬 신드롬이 도입되어, 있는 상 없는 상 만들어서 반의 모든 학생에게 상장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만 잘해도 온갖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아동학자들이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막무가내 칭찬에 아이들이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게 되고, 오히려 칭찬하는 부모나 교사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역효과를 가져 왔다는 얘기도 있었다.   

"사람들을 생산적이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회사와 가정에서는 정반대의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며 그에 따라 사람들의 사기는 계속 저하된다... 그 옳지 않은 일 중의 하나가 벌을 주는 것이다. "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핵심이고, 칭찬은 그것을 찾기 위해 제시한 하나의 기술일 뿐이다. 
따라서, 사람을 자산이 아닌 비용으로 보는 시각부터 바꾸는 게 우선이고, 이 책에서 배워야 할 점도 그런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칭찬만 한다고 사람이 발전하지는 않는다. 애정이 없는 칭찬은 칭찬이 아니라 빈정거림이나 욕으로 들리기 십상이고, 성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칭찬은 고래나 춤추게 한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비판이 조직과 구성원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랑하니까 그 마음을 표현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그런데 기술을 부린다고 사랑이 생기지는 않는다. 말과 행동, 문화와 이벤트가 일치하지 않으면 조직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다시한번 궁금해진다. 왜 경영자는 달을 가리키면 그 손가락만 보는 것일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저자
켄 블랜차드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02-12-28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겅호]의 저자가 선사하는 성공하는 인간관계의 비결! 켄 블랜차...
가격비교







Posted by 티나게
,

< 사고는 다시 일어난다 >


내용없는 뉴스 밤새 쳐다봐야 속만 탈 뿐이고 내일 신문 뒤적거려봐야 사고 이름만 바꿔 넣으면 똑같은 내용일 뿐일 것이다. 
쓰레기 언론이나 경찰 따위 국가권력은 분노를 받아낼 대상이 될 희생양을 찾아 길거리에 매달아 놓을 것이고, 안전 규칙 강화 따위의 누구도 실행될 거라 믿지도 않을 제도를 대책이라고 내놓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고는 또 일어날 것이다. 
하루 42.6명이 자살하고 1년이면 15,566명이 죽어가는 나라다. 그래도 그런가보다 하며 우리는 각자도생 살아가고 있다. 
생계가 막막한 시민이 굶어죽어도, 장애인이 불에 질식해 죽어도,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맞아죽어도, 우리의 관심과 분노는 그때뿐 또다른 충격과 이슈에 시선을 뺏긴다.


'설마'와 '대충'이 사회적 습속으로 뿌리내린 사회이고, 그 한편에 무한 생존 경쟁에 사회구성원들은 내몰리고 있고, 스스로 그 길로 몰아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아무리 해운회사를 조지고 선장을 비난하고 엄벌을 외쳐도 결국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손가락질 받는 그들은 아무런 힘도 없으며, 벌을 받아야 할 자들이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로 함께 손가락질을 하기 때문이다.


솔직해지자. 그리고 분명히 인식하자. 이런 사고는 분명히 반복해서 또 일어날 것이다. 이미 가깝게는 해병대캠프, 마우나리조트 사고를 겪었고, 이땅에 살면서 우리는 기억도 안 나는 숱한 사고를 겪어 왔다.


그래서, 또다시 어디에서 덮칠 지 모를 재난을 최대한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자. 
단지 법을 보강하고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잘못을 저지른 놈을 사형에 처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순간적인 만족감을 느낄 뿐이고 감정의 분출과 해소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자칭 보수, 애국세력이라 자처하는 정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리가 없다는 것도 알만한 사람은 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다. 더 절망적인 점은 무능한 판에 욕심까지 많다는 것이다.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전면 수입을 금지해야 함에도 위험하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수입해도 괜찮다는 정부다. 바다건너 핵발전소 사고를 보면서도 우리는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정부다. 전투기와 충돌할 위험이 있대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까이꺼 설마하며 백 몇층짜리 빌딩을 올리는 정부다. 
그리고, 행동하는 일부 시민들,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온몸으로 저항해도 시민의 호응은 커녕 그들만의 저항으로 묻혀버리는 사회다.


이미 위험을 당연시하는 국가, 그것을 강화하는 정부에서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그냥 막연한 희망이고 안타까움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시민으로서 책임회피이다.


< 부조리한 삶에 저항하며 조금 더 불편하게 살자>


밖으로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자연스럽고 본능이다. 하지만 동시에, 의식적으로 자신을 항해 자성의 시간을 가져보자. 
잠깐의 분노와 울분, 이어지는 체념과 망각, 그리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생활로 다시 복귀하는 그 익숙한 습관과 순환고리에서 벗어나자.


일상의 부조리함 하나하나에 시민적 감수성으로 따지고 묻고 문제를 제기하자. 그렇지 않다면 결코 사회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가진 자의 편인 권력은 우리의 분노와 염원에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소수 활동가와 깨어 있는 시민이 흘리는 피와 땀에 무임승차나 하면서, 제 앞가림에 바쁘다는 핑계로 비루하고 비겁한 노예로 살아갈 것인가?


생활에서 부딪히는 사소한 부조리함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항의하자. 관심과 연대, 그리고 실천만이 우리 사회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 권리 침해에는 악착같이 지키고자 하면서도 타인이 당하는 고통에는 무관심한 우리가 바뀌어야 세상이 살만해질 것 같다. 
내 자식이 조금 힘들어져도 자식과 함께 학교의 부당한 규제과 강압에 맞서 싸우는 부모가 많아져야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그런 항의를 실천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사람이라도 줄어든다면 말이다. 


불편함을 무릅쓰는 것이, 아니 그런 불편을 기꺼이 겪고자 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기본 태도라고 생각한다. 
행동하지 않는 자는 욕할 자격도 없고 욕먹을 자격조차 없다. 
난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 지켜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런 모든 일은 시민들의 힘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시민들을 '사회적 시민'이라고 하자. 인간의 존엄을 지속적으로 부정하고 소외오 분열을 부추기는 자본은 죽음의 세력이 되어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약자들, 소수자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이런 사회의 시스템과 구조를 부단히 인간적으로 변화시켜가는 사람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사회적 시민이어야 한다." 
-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중에서


Posted by 티나게
,

18년동안 중소기업에서만 조직 생활을 했다. 본부장, 임원이기도 했고, 6년여 동안은 본의아니게 사업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과 실패의 드라마보다는 그냥 실패와 정체의 연속이라고 보는 게 더 어울리는 세월이었던 같다.


20여명 짜리 회사가 불과 일년만에 자산 400억짜리 100명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가, 일년만에 폭삭 망해가는 과정을 겪기도 했다.

본의아니게 사업이란 걸 하게 되면서 만 6년을 사장이란 어색한 직책을 달고 온라인 비즈니스에 몸을 담기도 했다. 이 시기 내게 사업이란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돈 안되는 아이템으로 어떻게 돈을 만들어야 하는 풀기 어려운 과제를 놓고 씨름하는 과정이었다. 결과는? 실패.

그리고, 다시 임원으로 일하게 된 솔루션 회사에서 만 7년을 조금 못 채운 기간동안 COO, CMO 등의 타이틀을 달고 일했고, 심지어 연구소장까지 잠깐 맡아보기까지 했다. 10여명 규모의 회사가 50여명까지 성장하고 회사의 인지도와 브랜드도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중폭의 인력조정을 거친 후 나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 또한 결과적으로, 실패.


그리고, 이제서야 확실히 깨달은 점은, 나는 리더이기보다 팔로워의 역할이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리더란게 꼭 조직의 수장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앞서 나가는 이의 뒤를 책임지고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보좌하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과감히 직언하는 참모의 자리인 것 같다.

즉,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서 '남 좋은 일' 시키는 게 내게 맞는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처럼 남는 시간에 그동안 가슴에 품고 머릿속에서 생각만 했던 이야기를 풀어볼까 생각한다. 이른바, '중소기업 실패경영'.

왜 중소기업이고, 왜 성공도 아닌 실패인가.


당장 책방에 가보라. 경영과 관련해서 무수하게 많은 책들이 널려 있다. 가장 흔한 분야가 경영과 전략이다. 문제는 그런 책들이 모델로 삼고 있거나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기업들이 대부분 대기업들이라는 것이다.

기업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이지만 정작 경영관련 서적들은 10% 또는 상위 1%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성공 비결을 얘기한다. 나 또한 많은 경영서적들을 읽으면서 항상 목말랐던 것도 정작 대한민국 중소기업을 위한 경영서는 그리 쉽게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90%가 중소기업이란 말은, 그만큼 중소기업 대상 경영전략이나 기획, 운영, 인사, 마케팅을 이론으로 정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공할지도 안 할지도 모르고,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데 '이래서 성공했다'고 과감히 주장하기도 힘들 것이다.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가는 일본만 해도 중소기업 사장을 위한 소기업 사장학이란 책이 있다. 그리고, 성공한 기업이 아니라 실패한 기업에 초점을 맞춰서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실패학'이란 분야도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흔한 속담이 기업 경영만큼 적절한 곳이 흔히 있을까 싶다. 성공하는 법을 배우기 이전에 실패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성공의 비법과 더불어 실패의 징조도 함께 학습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경험은 한정적이고 부분적이다. 내 말이 정답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 경험의 범위, 즉 내가 겪은 회사, 내가 듣고 본 회사, 여러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례 등을 종합해서 내 나름의 생각을 얘기해보려 한다.


비록 아주 작고 보잘 것 없겠지만, 성공을 위해 고투하고 있는 모든 중소기업 사장과 구성원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티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