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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8 참사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도서]실패학의 법칙

하타무라 요타로 저/윤정원 역
들녘미디어 | 2004년 02월

또다시 사고가 일어났다. 그냥 사고가 아니라 대참사. 
선장은 먼저 도망쳤고, 재난대책시스템은 여전히 엉망이고, 생존자를 찾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알송달송한 정부의 태도는 국민의 분노와 울분만 키우고 있다. 
숱한 사건과 사고로 점철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왜 이런 인재가 끊이지 않고 나오며, 왜 그때마다 허술하고 어이없는 응급조치만 있는지, 그리고 왜 대책같지도 않은 대책만 등장했다 사라지는 걸까?
이 책은 그런 의문에 깔려 있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즉, 원인이 있고 그에 따라 결과가 있다는 단순한 인과논리로는 사고의 진정한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 처음 '실패학'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가 집필한 것으로, 일본에서 2002년에 출간됐고 우리나라에는 2004년에 나왔다.  십년이상 된 책이지만 현실적합성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매번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는 우리나라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내용이 많은 책이다. 가령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일본 사회는 실패의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을 나누어서 생각하는 풍토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당사자에 대한 처분이 결정되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여, 더 이상 실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패가 반복되는 것이다. 당사자에 대한 추궁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다음 실패를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재생산을 할 우려가 있다. 


딱 우리 사회가 실패에 대처하는 모습 아닌가.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 유람선 화재, 씨랜드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태안 해병대 캠프, 마우나리조트 붕괴, 그리고 세월호 침물. 
무엇하나 참사가 아닌 게 없으며, 선장, 기관사, 교사, 건설사 등 직접적인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온갖 비난과 분노가 쏟아졌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당장 태안 해병대캠프 사고만 해도 그렇다. 무허가 캠프가 원인이라는 단순한 결론으로 마감되었고, 그 이후로도 여전히 청소년 캠프는 돌아가고 있다.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로비를 벌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거래, 그리고 그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허술하게 운영할 수 밖에 없는 캠프 등 근본적인 원인이 빤하게 보임에도 경찰은 그 문제를 덮고 넘어가버렸다. 
이쯤되면 원인이 업계의 구조적 불합리인지, 그런 걸 묵인해주는 권력과 사회적 분위기 탓인지가 애매해진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원인과 책임을 나누어서 생각할 줄 아는 풍토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접근 방법에서 나온 대안을 들고 정부를 압박하거나, 그것이 안됐을 때 시민사회 차원에서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실천이 필요하다. 

실패학은 실패를 분석해서 그런 실패가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도록 개선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여기서 핵심은 실패의 원인과 사람에 대한 책임 추궁을 나누어서 본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담당자의 능력이나 태도의 문제로 책임 추궁과 원인을 동시에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실패학에서는 원인이 있으면 바로 결과가 나온다는 사고에 문제를 제기한다. 독사의 독은 물이 원료이기 때문에 물을 말리면 된다는 원인->결과식의 사고는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지 못한다고 본다. 
그래서, 원인을 '요인'으로 보고, 그 요인이 입력되어 결과를 출력하는 '장치'가 중간에 있다고 본다. 즉,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젖이 되듯이 장치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원인은 무엇인가'하고 원인과 결과를 직접 연결해서 생각하기 마련인데, 실패학에서는 그것을 일으키는 특성 장치와 그 특성을 발현시키는 근거가 되는 요인의 두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원래 있었던 '장치'라는 시스템에 '요인'이 입력되었기 때문에 '결과'가 출력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상적 조치가 아니라 진짜 원인을 찾고 실패가 일어나기 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실패를 예방하거나 개선할 '장치'를 바꾸는 게 최선이지만, 정작 그 장치를 좌지우지하는 주체가 그럴 의사가 없다면 어찌할 것인가? 
아래의 말은 대한민국에 그대로 적용해도 전혀 어긋남이 없다. 

실패나 부정행위 등이 표면에 드러날 것 같은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계속 숨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 번 숨기면 계속 숨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를 고발하려고 하면 동료를 팔아넘기고 배신하는 행위가 된다. 이는 만국 공통의 현상이지만, 특히 일본의 조직은 무리의식이 강하여 고발하려고 하면 '밀고했다', '고자질했다'라고 하여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사내의 부정을 폭로한 사람이 결국 퇴직했다는 말도 종종 들린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조직 내에서 부정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정하려는 사람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내부고발자를 대하는 모습이랑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건축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문제를 공개했다면 리조트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해병대캠프가 무허가임으로 학생들을 보낼 수 없다고 교사나 학부모가 나섰다면 그런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20년 가까이 사용한 배를 인수해서 무리하게 증축까지 한 것이 사고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걸 내부 고발자가 공개했다면 저런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는 배신자, 밀고자라는 손가락질을 감내하면서까지 용기있게 나서는 사람을 지지하고 지켜주기는 커녕, 원리원칙 밖에 모르는 고지식한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았던가. 회사의 부정을 폭로한 동료나 성희롱으로 고통받는 동료의 어깨를 겯고 같이 싸워주기는 커녕 회사의 눈치를 보며 왕따시키지는 않았는가. 우리 아이만 학교에 찍힐 게 두려워 캠프니 수학여행이니 따위의 의미없는 행사에 마지못해 동의해주지는 않았는가. 

이 책에서 말하는 실패는 전략의 실패는 물론 더 넓게는 부정, 불의를 포괄하는 뜻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그런 불의와 부정에 나 자신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나가지 않는 이상, 그리고 그런 시민과 연대하는 시민 의식을 키워가지 않는 이상, 실패는 반복되고 '장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대책이랍시고 잠깐 변죽을 울리다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 최소한 앞장서 불의와 부정, 불합리에 항거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지는 말자. 
그리고 이제는 이 악순환을 끊어내자.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위선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Posted by 티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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