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약간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을 때는 이미 갈등이 심화된 상태이다. 따라서 불만도 매우 격렬하게 표출된다. 

우리나라처럼 문화적 환경이 수직적이고 대화와 논쟁보다는 지시와 복종이 우선시되는 환경에서는 이런 불만과 갈등이 갑자기 펑하고 터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식으로 내 불만을 드러내야 할지를 모르고, 웬만하면 참고 따르는 게 미덕인 것처럼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문제제기의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조직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이런 사회적 배경때문에 더욱 극적이고 격렬하게 나타난다. 

 

이미 서로 불만이 쌓여 있고 갈등이 깊어진 상황에서 마주앉아 차분히 얘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대화의 목적이 무엇일까? 갈등과 불만을 해결한다는 건 어떤 뜻일까? 

다시 한번 으쌰으쌰 새로운 마음으로 더욱 깊어진 믿음과 조직력으로 단단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맞는 조직을 찾아 떠나(보내)는 것일까? 혹은 좀더 시간을 갖고 갈등을 풀어가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일까? 

어느 것도 정답은 없지만 모두 해답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결과를 얻겠다는 목적으로 대화에 임한다면 오히려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달성하겠다는 목적이 사고를 경직시키기 때문이다. 

 

이 대화의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상관없다는 마음, 그리고 평가보다는 경청, 판단보다는 내 마음과 의도를 진솔하게 얘기하는 게 우선이다. 상대방의 얘기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인정하고 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내 마음을 얘기해야 한다. 미처 다하지 못한 생각, 미처 표현하지 못한 기대까지 모두 다. 즉, 속마음까지 털어놓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업무성과, 태도, 전략에 대한 차이 등등으로는 갈등과 불만의 뿌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 정도만 얘기해도 충분하다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지만 그런 식으로 대화를 전개하다가는 십중팔구 상대의 잘잘못을 지적하고 내 의도를 방어하는 공성전으로 전락하게 된다. 

애초 이 대화는 상대를 딛고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닌데 하다보면 그렇게 흘러간다. 표현하지 않은 감정과 의도는 상대가 이해할 수가 없다. 맥락이 거세된 채 단지 논리적이기만 한 말로는 상대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칭찬만 하고 마음에 안드는 모습이나 부족한 능력에 대해서는 입다물고 이해해줬을 수 있다. 직원이든 사장이든 서로 비슷할 것이다. 

그렇게 미안한 마음에, 싫은 소리하면 싫어할 까봐 하는 마음에 비치지 못한 생각부터, 고백할 필요가 있다. 정작 해야 할 것은 이런 얘기이다. 

 

왜 나는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데 저 사람은 이상하게 보는지, 상대방의 눈으로 내 모습을 보아야 이해라는 게 가능해진다.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 선 채로 그냥 각자의 입장을 던지기만 해서는 누가 오래 버티는지 겨루는 지구력 싸움이 될 뿐이다. 

 

그래서 조직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최초 진통에서, 아니 이후 모든 진통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고백이다. 

고백은 대화를 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고해성사를 하라는 게 아니다. 미처 표현하지 못한 내 마음, 내 생각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 자체가 내 부족함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쉽지 않다.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직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이 함께 가기 위해서, 언젠가는 리더의 자리로 본의아니게 올라가야 할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용기이고 경험이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성숙해진다.

사람도 조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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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티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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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화나 도둑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다보면 작전 시작 전 서로의 시각을 정확히 맞추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각자가 보는 시각이 다르면 작전이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이 '시각 맞추기'와 비슷한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의미의 통일'을 들겠다. 

 

회사에서든 친구사이든 가족끼리든, 대화를 하다보면 같은 단어를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자주 겪게 된다. 개발자가 말하는 개발 '완료'와 사장이나 영업담당이 이해하는 개발 '완료'는 서울과 대전만큼의 이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각자 이해하는 '완료'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케팅이라 말하면 누구는 영업을 근사하게(?) 표현한 말이라 이해하고 누구는 홍보라고 접수한다. 

 

이처럼 말로 표현을 해도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가 흔한 게 인간사인데, 조직에서 각자의 역할에 대한 정의나 기대하는 바, 기대한다고 말하는 단어와 그것이 뜻하는 실제 의미 등 많은 부분에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심전심이나 눈빛만 봐도 통한다는 따위를 상호 신뢰나 팀워크의 근거로 삼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친한 친구 사이에도 오해가 쌓여 갈등을 빚는 경우가 흔한데, 조직에서 한번 어긋나기 시작한 관계는 조직의 팀워크나 분위기를 심각하게 해치는 단계로 악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가령 부장인 내가 과장인 A에게 기대하는 업무 능력과 성과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합의해야 한다. 상대방이 내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같은 단어로 말하지만 다른 의미로 사용하거나 다르게 이해한 것을 확인하고 정리할 수 있다.   

 

'수평적인 조직', '자율적', '주체적'... 많이 들어본 단어이고 '대충' 무슨 뜻인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함의가 무엇인지를 말해보자고 한다면 서울에서 대전이 아니라 서울-부산만큼 이해가 다르다. 심하면 아예 정반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가령, 수평적인 조직이란 어떤 조직일까? 각자 간섭없이 자기 일 책임져서 처리하고, 어려운 이슈가 생기면 회의 소집해서 머리 맞대서 해결책을 찾아보는 그런 조직? 결제나 사전 보고도 없이 알아서 해도 되는 조직? 신입이나 20년 경력 부장이나 같은 레벨에서 자기 업무를 알아서 진행하는 조직? 

 

자율적은 어떤 자율인가? 알아서 자기 일 잘 찾아서 잘 하는 거라면, 알아서 했는데 잘 안되는 경우에는 어떡해야 하나? 담당자와 상사의 의견이 다르면, 더 나아가 담당자의 업무 내용이 조직의 사업 방향과 다르면? 자율적 해결은 어떤 걸 뜻하는가? 자율과 방종은 어느 지점에서 갈라지는가?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드는 과정에서 서로의 머릿속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고, 심지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말과 행동의 차이도 발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성과는 무엇일까? 

상호 이해? 물론이다. 하지만 이해는 오해를 막아주긴 하지만 조직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모여있는 곳이 아니다. 목적을 정하고 목표를 수립하고,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해서 성과를 내야하는 곳이다.

조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과는 '관점의 정렬alignment'일 것이다. 흔히 회사는 사업 목표와 전략에 따라 그 하위 목표와 계획들이 수립된다. 사업을 정렬한다고 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뭔가를 실행하려면 무엇보다 구성원간 '언어의 통일'이 필요하다. 앞서 예로 든 것처럼 마케팅을 영업이나 홍보로 이해하는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는 것이다. 한창 일을 만들고 난 뒤에야 '그게 그런 뜻이었다고?'란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시작부터 이 지점을 확인하고 정의해야 한다. 

 

개발자가 완료라고 하는 건 베타테스트 버전일 수 있지만 영업자에게 완료는 당장 상용으로 풀어도 문제없는 완성품을 말하며, 마케터에게는 제품의 포지션부터 컨셉, 홍보전략까지 완비된 상태를 말한다.   

이해의 차이를 확인하지 않았다가 나중에야 그걸 확인하면서 느끼는 허탈함과 배신감은 여러모로 조직에 악영향을 미친다.

물론! 우리는 실수에서 배우고 실패를 통해 성공으로 가는 길을 찾는다. 

 

갈등이 터져나온 A이사와 사장의 관계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관점의 정렬, 언어의 통일, 즉 같은 단어를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얘기하는 것 말이다.

그럼, 이렇게 서로 불만이 쌓여 있고 감정이 상한 상태라면,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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