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뼉을 마주친다는 건 하이파이브처럼 뭔가 기분좋은 일이 있을 때나 마음이 맞을 때 쓰는 표현이지만, 조직내 갈등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낼 때도 사용할 수 있을 듯 하다. 나는 불만인데 그 불만의 대상은 그런 줄 모르거나 알면서도 회피하면 갈등을 해결할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뭔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서로 풀어보자고 나서는 그 순간, 손뼉을 마주쳤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아예 그런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한쪽만 열심히 손 흔들다 제 풀에 지쳐 떠나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A 이사가 드디어 참고 참았던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현했다. 물론 그전에도 우회적인 형태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풀리지 않았던 터라 더 이상 이대로는 일을 못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복한 회사 만들자고 의기투합했고 상호 존칭을 불러주면 뭐하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자세로 윽박지르기만 한다. 직원의 말을 귀담아듣기보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는 모습만 보여준다. 본인의 잘못에는 너그럽고 직원의 업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냉정하고 독선적이다."


한번 터진 불만이 계속 이어져 나온다. 


"박봉과 야근의 연속에도 좋은 회사 만들어보자는 마음 하나로 열과 성을 다해왔다. 당장 회사 매출이 급하기에 우리 사업분야가 아닌 프로젝트도 군말없이 수행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마냥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만 낸다. 

이게 동지로서 함께 하자는 회사의 모토에 어울리는 모습인가? 이런 식으로는 여기서 계속 일할 의미가 없다."


사장도 상대의 불만이 간단한 수준이 아님을 알고 위기감을 느낀다. 하지만 서운하고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함께 행복하자고 만든 회사이고 그 마음은 변한 게 없다.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문제라면 그 지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 허나 나도 내 나름대로 불만과 아쉬운 점은 있다."


사장도 그동안 상대에게 쌓인 불만을 이제야 털어놓는다. 


"나는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각자 주체적으로 일을 하기를 바랬다. 스스로 끊임없이 발전하려는 자세를 갖고 노력하기를 바랬고 기탄없이 토론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런 노력보다 그냥 자기가 다 알아서 처리하려다 보니 일은 힘들고 시간은 길어지고 스트레스는 쌓이면서 불만만 높아지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익숙한 업무 방식을 따라 수동적으로 눈앞에 벌어진 일을 처리하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열심히 일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걸로 불만의 알리바이로 삼는 건 자신에게 냉정하거나 객관적이지 못한 모습이다. 자신과 조직의 발전을 위해 좋은 모습은 아니다. "


각자가 생각하는 상대방의 부족함과 아쉬움이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하가 보스에게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물었는데 보스가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란 대답은, 텍스트만 읽자면 뜬금없다. 위의 대화도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그 바탕에 깔린 맥락은 하나다. 


내가 기대하는 바를 채우지/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기대하는지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기대받는지 분명히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아도 너는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몰라주니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실망하다 불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믿었기에 실망과 배신감도 더 심해지는 것이다.  


이제 좀 회사를 키우려는 시점에 도원결의한 창업멤버들 사이에 터지는 이런 성장통은 회사를 휘청거리게 한다. 제대로 풀지 못한다면 최악은 면하더라도 정상궤도로 복귀하는 것만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 노력이 들어가게 된다. 


어떻게 이 어렵고 중요한 성장통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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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티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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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고 읽는 저자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유정식 씨의 신간이다. 이번 책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의미있고 유용한 내용들로 만족감을 준다.

 

업무든 대화든 의외로 같은 말을 다른 뜻으로 사용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정의, 평등, 공정 같은 사회적 단어들은 말할 것도 없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션, 성과, 혁신, 팀, 팀워크, 기업문화, 평가, 생산성... 너무나 흔하게 듣고 쓰는 말이라 누구나 그 의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개념 정의를 해보라면 딱 떨어지게 설명하지도 못하고 말하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A는 B를 뜻한다'가 아니라 'A는 B와 같은 경우를 말한다'는 식으로 사례로 설명하거나, 팀워크를 팀의 단결이라는 동어반복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기에 온갖 화려한 단어로 점철된 문장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각자 알아서 이해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장과 팀장, 팀장과 팀원이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확인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책에서는 개념 정의의 중요성과 흔히 사용하는 개념의 의미를 하나씩 간결하고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23가지 대표적인 개념과 그에 뒤따르는 부수적인 개념까지 포함하는 총 86가지 개념을 쉽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내게는 '성과'에 대한 정의가 인상깊게 다가왔다. 회사를 성과 중심의 조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데, 과연 성과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통일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흔히 성과=매출증대 쯤으로 이해하는데 그렇게 되면 성과중심이란 무슨 수를 쓰든 돈을 많이 벌면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딱이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좋은 방법을 통해 축적한 미션 및 비전 달성의 정도'. 저자가 생각하는 성과의 정의이다. 조직의 방향과 목적, 과정을 포괄한 의미로서 성과를 정의한다. 성과를 매출증대로 이해하는 것과 비교하면 단어 하나의 정의가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올지 짐작할 수 있다.

 

전쟁영화에서 부대원끼리 작전개시 전에 각자 시계의 시각을 맞추는 것을 볼 수 있다. 전투원은 시간을 통일해서 전투를 수행하듯, 회사는 정확한 개념 정의를 통해 방향을 정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꼭 이 책의 개념 규정을 따르지 않더라도 조직 나름대로 개념을 정의해서 구성원들이 공통된 관점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신입에서 CEO까지~'라는 부제처럼 구성원 모두가 읽어보고 서로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통일하는 데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Posted by 티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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