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아이의 성장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팔다리로 충분히 기어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네 다리로 기면서 팔다리의 관절과 뼈를 충분히 단련한 다음에 보행기를 이용해 걷는 연습을 한다. 그런 다음에 두발로 걷기 시작해야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충분히 근육이 단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보행기에 앉히는 것은 오히려 아이에게 안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회사를 키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몇년만에 회사를 열배, 백배로 키우겠다는 욕심이나, 일년만에 글로벌한 업체로 만들어 대기업에 팔아서 수백억을 벌었다는 성공스토리에 현혹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업은 떴다방이 아니라 육아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길게 보면서 차근차근 접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 번 사업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와 성공을 모두 맛본 경영자라면 굳이 이런 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분이, 그런 경험을 겪지 못한 조직이, 급작스럽게 성장하는 것은 장기적인 생존과 성장의 관점에서는 독약이 든 사과일 가능성이 높다. 체격은 갑자기 커져서 허우대는 멀쩡한데 체력이 따라가지 못해 속으로 알게 모르게 곪아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회사가 성장하면 투자도 늘고 사업 아이템도 늘어나고 그에 따라 인원도 늘어나게 되며 관리 포인트도 늘어난다. 더이상 의자만 돌리면 전사 미팅을 할 수 있고, 굳이 절차같은 게 없어도 눈빛으로 통하고 아 하면 어 할 줄 아는 조직이 아니게 된다. 
사람이 필요하니 공채나 인맥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충원한 인력을 교육하고 적절한 역량과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관리하는 관리자의 역량도 매우 필요하게 된다. 

문제는 갑작스런 성장을 맞게 되면 그 모든 준비 과정이 허술해지게 된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도 사전에 모든 걸 준비할 수는 없으나, 커진 체격에 맞게 체력을 키우는 시간의 간극이 너무 벌어지게 되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 사이에 시장의 변화나 잘못된 전략적 의사 결정 등의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되면, 허약해진 맷집이 견디지 못하고 급격하게 무너진다. 

인터넷 열풍이 전세계를 휩쓸던 20세기말, 내가 다니던 회사도 급격하게 성장했다. 매달 많은 인원을 뽑았고 끊임없이 업무용 컴퓨터를 주문하고 자리를 이리저리 옮기고 늘렸다. 
우리 회사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주는 유명한 기업에서 다니던 인력이 그보다 낮은 연봉도 감수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우리 회사에 들어왔다. 수준 이하의 직원, 놀고 먹는 직원, 회사돈을 유용한 직원도 있었고, 자기 일에 치열하게 덤비던 유능한 인재도 많았다. 밤새워 일해도 피곤하지 않았고, 언론에는 회사 관련 기사가 주기적으로 실렸고, 사장님은 매우 개방적이고 건전한 사고방식을 지녔고 활달했으며 아이디어도 넘치는 분이었다. 일년만에 회사 인력이 다섯배가 늘어나는 급성장을 이뤘다. 

문제는 속으로 곪아갔다. 노는 사람은 놀고 일하는 사람은 일했으며 각 부서를 맡은 임원들은 아직 부서를 이끌 만한 역량이나 경험이 부족했다. 열심히는 했으나 방법을 몰랐다. 당연히 그 아래 중견간부들도 열심히는 했으나 성과는 그만큼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일년만에 대대적이고 꾸준한 구조조정이 이어졌고 결국 몇년 뒤에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성공이란 단어는 정의가 필요하다...무한정 계속 성장하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자연에서 성장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언젠가 의학 학술회의에서 영구히 성장하는 유기체가 있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누군가가 암이라고 답하면서 결국은 암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했다."
"기업은 성장과 축소라는 주기를 반복한다. 나는 이를 '기업 요요 다이어트'라고 부른다. 계속 팽창하는 기업은 비만한 기업으로 변한다. 비만해지고 나면 이제는 성장이 가능해질 때까지 어쩔 수 없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그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당혹감과 극도의 피로감과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누구나 그런 반복이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셈코스토리> 중에서

이 말은 비단 수천명짜리 기업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기업일 수록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성장 규모, 아니 적절한 성장에 대해서 주의깊게 생각해야 한다. 마냥 당장 많이 번다고 좋은 게 아니다. 컨텐츠나 서비스처럼 무형의 재화가 아니라, 매출의 확대가 조직의 확장을 필요로 하는 업종이라면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어른이 되고 싶다고 떡국을 열 그릇 먹을 수도 없고, 뛰고 싶다고 걷는 연습을 건너뛸 수 없다.

욕심을 참는 것도 능력이다. 배터지게 먹고 싶다고 그렇게 먹었다간 정말 배가 터진다. 우리 조직이 소화할 수 있는 밥그릇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를 먼저 가늠해야 한다. 그것에 실패하면 결국 탈이 나게 된다.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게 아닌 것처럼, J커브를 그리면서 급성장한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다. 
급성장이 도움이 되는 건 남의 돈을 유치할 때나 단시간에 M&A를 할 때만이다. 그게 기업을 하는 목적이라면 배터지게 먹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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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는 성공이 보내온 선물이다 >

‘성공’의 기준은 뭘까? ‘실패’의 기준은? 
‘성공시대’ 류의 TV 프로그램에서 흔히 보는 건,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고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서 마침내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기업이나 사람이다. 
결국은 결과론적인 얘기다. 지금 기업이 잘 돌아간다고 성공한 기업이라고 할 수도 없고, 지금 망했다고 앞으로 뭘해도 망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성공과 실패는 성공이 실패 직전의 망조일 수도 있고 실패가 성공의 전단계일 수도 있다.

짐 콜린스의 희대의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란 책이 그렇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다가 대표적인 사기로 욕을 먹는 것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고 통계를 분석하는 시각을 달리했더니 위대한 기업이 위대하기는 커녕 평균적인 이익도 못내더라는 이유가 한몫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실패의 요소는 매우 많다. 사장의 개인적인 캐릭터부터 경영, 재무, 인사, 전략, 마케팅 같은 내부적인 역량, 그리고 시장환경, 경쟁제품, 천재지변같은 어쩔 수 없는 외부적 환경까지. 

나는 (지금) 성공한 기업이나 사람을 평가하면서, 칠전팔기, 한우물 파기 등 매우 개인적인 의지와 열정을 성공의 원동력처럼 보는 걸 믿지 않는다. 집안을 거덜내는 악조건에서도 한 우물을 팠기 때문에 성공한 게 아니라, 한 우물을 파는 동안 세월이 흐르면서 그 시대의 트렌드와 우연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 더 근사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번 성공했다고 또다시 십년을 한우물을 파겠다고 덤비는 건, 빈 지갑을 주웠던 어느 가로등 밑을 밤마다 서성거리는 거나 별다를 바 없다고 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난 이 말을 기업에 반대로 적용하고 싶다. 
‘성공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실패에 이르는 과정은 비슷하다’
성공에 이르는 ‘비법’, ‘성배’ 따위는 없다. 성공은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잘 결합되어야만 올라갈 수 있는 매우 울퉁불퉁한 좁은 길이다. 그리고, 불행한 가정, 즉 실패로 가는 길은 그 중 한 요소만 삐걱거려도 바로 빠져들게 되는 넓은 고속도로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 찰리 채플린 

밖에서는 성공한 기업, 다니고 싶은 회사, 매년 성장하고 있는 유망한 기업이라고 소개되는 회사도, 직접 그 조직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들은 정반대로 느끼는 경우도 흔하다. 그리고, 그런 이상 신호를 구성원 대부분은 느낀다. 사장만 잘 모를 뿐. 
또는. 알아채기는 했지만 차마 인정하기 싫어 회피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고치려다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성공이란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이고, 시쳇말을 갖다 쓰자면 ‘운칠기삼’이 아닌가 싶다. 
로또처럼 행운을 기다리는 게 낫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인간이 하는 일에 대해 겸손해야 하고, 삼할에 불과한 노력이라도 제대로 해야 칠할의 운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회라는 파도가 몰려 올 때 휩쓸려 익사하지 않고 파도에 올라타 서핑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파도에 빠져 물 좀 먹었다고 서퍼로서 실격자인 건 아니다. 많이 빠져봐야 타는 법을 익힐 테니까. 실패는 성공을 위한 강력한 예방주사이다. 
중요한 건, 작은 실패를 많이 겪으면서 큰 성공을 예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익사는 하면 안된다. 그래서 난 실패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패는 성공이 보내온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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