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멤버, 그 어려운 관계>

"어떤 나그네가 긴 여행 끝에 크고 넓은 강에 이르렀다.
강 너머는 평화롭고 아늑한 땅이 있었다.
나그네는 강을 건너기 위하여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나룻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갈대와 나뭇가지를 꺾어 뗏목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공들여 뗏목을 만든 다음 그것을 타고 무사히 강을 건넜다.
평화롭고 아늑한 땅에 도착한 나그네는 자신이 건너온 강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이 뗏목이 아니었다면 강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 이 뗏목이야말로
내게 큰 은혜를 베풀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자신이 타고 온 뗏목이 아깝게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무겁고 커다란 뗏목을 가져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그네는 무거운 뗏목을 어깨에 메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모두 비웃었다."
- <증아함경>

금강경에 나오는 저 비유가 창업 멤버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허름한 사무실, 좁은 오피스텔에서 서너명이 의기투합해서, 밥 대신 꿈을 먹고 돈 대신 에너지를 받으며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매출이 늘고 직원도 늘어난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더 흐르고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규모를 갖춘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고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접어드는 때가 온다. 그리고 그때쯤, 또는 이미 그 전 쯤에 전형적인 문제 하나가 생긴다. 
사장에게는 괴로움과 난감함, 직원에게는 불만으로 다가오는 문제. 바로 창업 멤버의 능력과 역량에 대한 문제이다. 

물론 창업 초창기 멤버들이 조직의 성장과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반면 조직은 성장했는데 창업 멤버들은 초기 업무 역량에서 크게 올라가지 못하고 맴도는 경우도 많이 있다. 초창기에는 보통 영업적 필요로 전 사원의 간부화, 임원화가 일어난다. 대부분 팀장, 부장, 이사 등의 직급을 달게 된다. 어쩔 수 없기도 하고 필요하기도 하다. 내용은 없지만 타이틀이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직이 커지게 되면 타이틀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그러길 기대하는 때가 오는 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이다. 
창업 멤버라는 프리미엄 덕에 임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임원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필요한 역량이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덧 매너리즘에 젖어 들고 업무는 관성적으로 수행한다. 
아래로는 똑똑한 직원들이 들어오는 데 정작 임원은 그들을 리드하기는 커녕 쫓아가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 벌어진다. 어느 순간, 초창기 멤버들이 조직 발전의 걸림돌이나 병목 현상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기 시작한다. 
더 큰 비극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은 다 아는 데 당사자만 모른다는 점이다. 

자리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고, 자세의 문제일 수도 있고, 기업 문화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타이틀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계속 그 조직에서 함께 하기는 매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해법은 있는 그대로 그 사실을 알려주고, 다시 창업 초기의 열정과 자세를 떠올리며 노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거나, 노력하더라도 한계가 보인다면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서로를 위해서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좋을 때 헤어지는 게 그마나 마음이 덜 상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조직이 어려운 상황이 되어서야 그동안 쌓였던 불만과 비난을 쏟아내 봤자 나아질 건 하나도 없다. 

당사자에게는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조직은 그동안 동맥경화로 고생했던 문제를 해결하며 미래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다. 
물론 본의아니게 조직을 떠나는 창업 멤버의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만, 최대한 예우를 갖춰서 그 마음을 달래주고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강을 건너게 해 준 고마운 뗏목이지만, 뗏목을 어깨에 이고 갈 수는 없다. 뗏목이 필요한 강가로 찾아갈 수 있도록 내려놓거나, 뗏목을 해체해 길을 헤쳐가는 용도로 재구성해야 한다. 
여기서 사장의 결단과 냉정함이 요구된다.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지에 대한 미안함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으로 곪게 놔두는 건 사장으로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Posted by 티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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