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성장하면서 굳이 대기업을 따라하지 않아도 되는 데 따라하는 게 하나 있다면 성과측정지표가 아닐까 싶다. 이른바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MBO나 BSC(Balanced Scorecard) 등의 성과 중심의 경영방식과 함께 구체적으로 성과를 관리하기 위해 KPI를 도입해서 운영한다. 주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성과 평가와 보상을 위해서 도입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런 평가지표는 최선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거라도 있어야 하기에 도입하는 차선에 가깝다. 정말 이런 평가 지표 자체가 개개인의 업무 성과를 제대로 반영한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나도 회사에 있을 때 KPI란 것을 도입해볼 생각으로 검토해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느낀 이 평가 방법의 가장 큰 한계는, 앞으로 진행하거나 일어날 일들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지금까지 해 온 업무를 토대로 미래의 업무를 예측하고 성과 지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런 ‘근자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 방식까지 도입한다면 볼 만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해 운영해보고 보완 사항이 있으면 다시 추가해서 반영하겠지만 결국은 사후약방문이며, 자신의 성과와 기여가 정당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은 남게 된다. 
무엇보다 이런 사전 지표 수립은 끊임없이 조직이 바뀌고, 새로운 업무와 사업이 추가되고,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진행하거나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조직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고 부작용만 생긴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중소기업이다. 
가장 흔한 경우가 KPI에 반영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실제로 지인이 다니고 있는 회사는 15년 이상의 업력과 직원이 100명이 훨씬 넘는 IT 기업이다. 그 분의 고충 중의 하나가 업무 협조받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타 부서의 도움이 필요해서 요청하면 일단 KPI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내부영업’으로 구워 삶아서 도움을 받거나 담당자의 선의에 기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을 잘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만든 것이 KPI같은 평가지표인데, 거꾸로 KPI를 맞추기 위해서 일을 하는 꼴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KPI만 달성했다고 성과가 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 
KPI를 담당자 본인이 직접 만들게 해도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 KPI가 도전적인 목표인지 적당하게 설정한 것인지 판단은 누가 할 것인가? 그 판단이 맞다는 건 또 누가 보증할 것인가? 더 큰 문제는 KPI에 들어 있지 않은 신사업 등의 업무가 생기게 되면 그때마다 KPI를 수정할 것인가? 일년 안에 답이 나오지 않는 사업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하는가? 
물론 이런 문제를 지표 설정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해서 문제를 최소화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이 주제는 다음 번에 언급하겠다)

KPI로 표현되는 성과관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세우고 지표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계획, 실행, 평가의 전 과정이 제대로 굴러가야만 가능하다. 
문제는, 보통의 중소기업에는 그런 프로세스 자체가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제도만 도입해서는 소기의 목적을 거두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냥 돈쓰고 시간쓰고 힘만 빼고 분란만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성장하는 중소기업에서 사전 준비없이 KPI를 도입하는 건 조직을 경화시키고 안전 위주의 업무 태도를 불러올 위험성이 매우 높다. 즉, 부서간 칸막이가 높아지고 부서 이기주의로 흐르게 되는 이른바 ‘조직의 사일로 효과(organizational silos effect)’를 불러와 업무 효율과 성과를 저해하고 조직문화를 해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KPI가 어떤 경우에도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세월이 흘러도 업무에 별로 변화가 없거나 단순 반복 업무, 또는 공장의 생산라인처럼 정해진 제품을 생산하는 분야 등의 경우에는 KPI나 성과급 보상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Posted by 티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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