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어느 정도 업력이 쌓이고 안정적으로 매출이 일어나게 되고 인원도 이제 몇십명 수준으로 늘어나게 되면 여러가지 제도들을 검토하고 도입하게 된다.


앞서 KPI와 같은 성과평가 제도의 도입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런 제도만 도입하는 것으로는 애초 의도했던 목적이나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표 그 자체에 매몰되거나 부서간, 개인간 갈등이나 불만만 더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도를 도입한다고 그 자체가 알아서 굴러갈 리는 없다. 사소한 규칙 하나가 생기거나 없어지더라도 한동안은 관성에 따라 변경 전의 규칙이 그대로 유지된다. 하물며 전사적으로 적용되는 시스템이나 프로세스가 생기는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모든 변화는 익숙한 습관을 유지하려는 관성이라는 저항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제도를 실행해야 하는 조직과 사람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령 KPI같은 성과 평가 제도 도입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소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고 일정 궤도에 올라섰다는 판단이 들자 사장이나 임원진에서는 이제 우리 회사도 '공정한 성과관리'를 통해 개인의 역량과 성과를 끌어올리자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외부 경영컨설팅 기관에게 제도 도입을 위해 컨설팅을 의뢰한다. 기관에서는 몇 차례의 면담과 질문지 배포와 수거, 업무 분석을 통해 부서별, 팀별 업무를 분류, 정리한다. 그리고 각 부서별로 주요 핵심 업무를 정리하고 일정한 양식에 맞춰서 연간 업무 목표와 지표를 수립할 것을 요구한다. 몇달간의 업무 분석과 목표 설정, 지표 수립이 끝나고, 이와 관련된 실무적인 운영 방침과 규칙, 성과 보상 정책 등도 함께 따라온다.


나는 이 과정이 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든 BOTTOM-UP 방식으로 진행되든지와 상관없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제도는 굴러가겠지만 매우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애초 의도했던 역량 계발이나 성과 향상이라는 목표는 거두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해당 조직의 구성원들이 평가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사장을 비롯해 각 부서나 팀의 책임자(임원, 부서장, 팀장)들이 자기가 맡은 조직의 달성 과제와 목표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팀원들도 자신이 올 한해 달성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그 목표 달성 여부를 무엇으로 수치화 할 것인지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매우 낯설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그냥 회사 전체가 한몸처럼 움직였고, 회사의 목표가 곧 부서의 목표, 나의 목표였으며, 도전 과제가 있으면 너 나 가리지 않고 함께 넘어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날 갑자기 부서, 팀, 개인이라는 단위별로 목표를 세우고 측정 지표를 만들라는 요구는 매우 낯설고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물론 조직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나 체질 개선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제도라는 형식만 들고 와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충분한 훈련이 필요하다.

이 훈련은 제도 도입을 논의하면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도입 전 적어도 일년 정도 기간을 두고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 훈련은 위에서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팀의 리더가 목표나 성과에 대해 감을 못잡는 데 아무리 팀원이 날고긴다해도 제대로 된 결과를 내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Plan-Do-Check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간부급부터 목표 설정, 실행, 교정, 업무 평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런 준비 과정에서 우리 조직이 현재 어느 정도 수준의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성과 평가 제도의 도입 여부나 시기, 보강해야 할 부분 등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중소기업은 체계적인 직원 교육 시스템도 없을 뿐더러 그런 걸 경험하고 입사하는 직원도 흔치 않기 때문에 이런 준비와 훈련, 경험의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


정말 구체적이거나 절실하게 필요해서가 아니라면, 의례적으로 따라하는 제도 도입은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받아야 할 컨설팅은 업무 분석이나 성과 지표 수립 같은 구체적인 제도가 아니라, 간부급이 갖춰야 할 리더십, 직급/업무 역량 계발, 멘토링 역량 수립 방안이다.





Posted by 티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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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 성장하면서 굳이 대기업을 따라하지 않아도 되는 데 따라하는 게 하나 있다면 성과측정지표가 아닐까 싶다. 이른바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MBO나 BSC(Balanced Scorecard) 등의 성과 중심의 경영방식과 함께 구체적으로 성과를 관리하기 위해 KPI를 도입해서 운영한다. 주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성과 평가와 보상을 위해서 도입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런 평가지표는 최선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거라도 있어야 하기에 도입하는 차선에 가깝다. 정말 이런 평가 지표 자체가 개개인의 업무 성과를 제대로 반영한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나도 회사에 있을 때 KPI란 것을 도입해볼 생각으로 검토해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느낀 이 평가 방법의 가장 큰 한계는, 앞으로 진행하거나 일어날 일들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지금까지 해 온 업무를 토대로 미래의 업무를 예측하고 성과 지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런 ‘근자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 방식까지 도입한다면 볼 만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해 운영해보고 보완 사항이 있으면 다시 추가해서 반영하겠지만 결국은 사후약방문이며, 자신의 성과와 기여가 정당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은 남게 된다. 
무엇보다 이런 사전 지표 수립은 끊임없이 조직이 바뀌고, 새로운 업무와 사업이 추가되고,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진행하거나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조직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고 부작용만 생긴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중소기업이다. 
가장 흔한 경우가 KPI에 반영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실제로 지인이 다니고 있는 회사는 15년 이상의 업력과 직원이 100명이 훨씬 넘는 IT 기업이다. 그 분의 고충 중의 하나가 업무 협조받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타 부서의 도움이 필요해서 요청하면 일단 KPI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내부영업’으로 구워 삶아서 도움을 받거나 담당자의 선의에 기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을 잘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만든 것이 KPI같은 평가지표인데, 거꾸로 KPI를 맞추기 위해서 일을 하는 꼴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KPI만 달성했다고 성과가 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 
KPI를 담당자 본인이 직접 만들게 해도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 KPI가 도전적인 목표인지 적당하게 설정한 것인지 판단은 누가 할 것인가? 그 판단이 맞다는 건 또 누가 보증할 것인가? 더 큰 문제는 KPI에 들어 있지 않은 신사업 등의 업무가 생기게 되면 그때마다 KPI를 수정할 것인가? 일년 안에 답이 나오지 않는 사업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하는가? 
물론 이런 문제를 지표 설정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해서 문제를 최소화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이 주제는 다음 번에 언급하겠다)

KPI로 표현되는 성과관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세우고 지표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계획, 실행, 평가의 전 과정이 제대로 굴러가야만 가능하다. 
문제는, 보통의 중소기업에는 그런 프로세스 자체가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제도만 도입해서는 소기의 목적을 거두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냥 돈쓰고 시간쓰고 힘만 빼고 분란만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성장하는 중소기업에서 사전 준비없이 KPI를 도입하는 건 조직을 경화시키고 안전 위주의 업무 태도를 불러올 위험성이 매우 높다. 즉, 부서간 칸막이가 높아지고 부서 이기주의로 흐르게 되는 이른바 ‘조직의 사일로 효과(organizational silos effect)’를 불러와 업무 효율과 성과를 저해하고 조직문화를 해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KPI가 어떤 경우에도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세월이 흘러도 업무에 별로 변화가 없거나 단순 반복 업무, 또는 공장의 생산라인처럼 정해진 제품을 생산하는 분야 등의 경우에는 KPI나 성과급 보상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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