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겪는 사춘기와 조직의 성장통이 다른 점이라면 사춘기는 자신의 의지로 제어하는 데 한계가 있는, 뇌 분비물질의 독립적인 활동의 결과이자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조직의 성장통은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 어느 시점에 터진다는 것이다. 현명한 조직이라면 문제가 터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다. 호미로 막을 수 있을 때 막으면 된다. (그게 잘 안되서 문제지만...) 


퇴사의 1순위를 다투는 게 늘 인간관계, 특히 상사에 대한 불만인 것처럼 초기 조직의 성장통도 사장에 대한 불만이 주 원인일 때가 많다. 인원이 적을 때는 직원으로 충원된 이가 기존 직원들이나 조직문화와 맞지 않을 경우 자연스럽게 퇴출되는 식으로 갈등이 해결된다. 하지만, 그 갈등의 원인이 사장일 경우 그런 식의 해결방법은 원천봉쇄된 상황에서 방법은 정해져 있다. 참을 수 있는 선까지 내가 참거나, 문제를 제기해 개선을 시도하거나, 조직에서 떠나는 것이다.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거나 개선의 기미가 안보이면  떠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상황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기에 해결방법도 사실상 두 가지로 한정돼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이런 상황까지 가게 되면 직원은 시킨 일만 하고 월급 밀리지 않고 나올 때까지만 일한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참으면 병이 되듯이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 한순간에 조직이 흔들리는 갈등으로 비화한다. 

어떤 종류의 불만이 쌓이는 걸까? 창업기업에서 불만은 당연히 사장으로 모인다. 구성원간의 불화조차도 그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장의 무능력, 무관심이 문제로 지적된다. 사업방향, 리더십, 조직운영의 원칙, 반복되는 사소한 습관까지, 다양한 지점들이 불만의 불쏘시개가 된다. 


창업 후 1~2년은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 바쁘기에 그런 문제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오로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데 모든 신경이 집중돼 있기에 개인의 성향, 취향,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거나 자제한다. 

그러다 생존의 기반이 마련되고 한 숨 돌릴 상황이 되면 이제 조직을 제대로 운영하고 키우는 것이 현실적인 주제로 서서히 떠오른다. 

업력이 쌓여가면서 사업방향, 목표와 전략, 성과 등을 두고 평가할 내용이 생기고 실패와 시행착오의 경험도 쌓인다. 이제 각자의 관점으로 평가하고 제안하고 논쟁한다. 


창업기업이 첫번째 성장통을 겪을 때 대부분은 사장의 리더십에 대한 것이다. 

뭉뚱그려 리더십이라고 했지만, 여기에는 사업전략, 영업력, 기술력, 조직운영 능력 등 업무 그 자체와 관련된 것들도 포함되지만, 이보다는 개인의 캐릭터에 대한 것도 무시못할 비중을 차지한다. 


'사장이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한 사람 의견에 너무 끌려간다', '매번 결정이 바뀐다' 등의 불만이 나온다. 

아니 이 불만이 나오기 전에 창업멤버는 이미 여러 해를 지켜보고 중간중간 의견을 개진했다. 그럼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갈등은 친한 사람끼리 모여서 사업을 한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이해와 믿음의 깊이가 다르기에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좀더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오랫 동안 친하게 지내 온 이들끼리 모여서 창업을 했다손 치더라도 막상 함께 일을 하다보면 몰랐던 면을 알게 된다. 이건 마치 아무리 연인끼리 오래 동거를 하면서 궁합을 맞추더라도 막상 부부로 살게 되면 또다른 갈등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사소한 갈등들이 부딪혔다 가라앉고 문제는 반복되고 불만은 쌓이면서 넓혀진다. 처음에는 이것이 마음에 안들었는데 이제는 이것저것 다 마음에 안들기 시작한다. 

"내가 왜 이 회사에 몸담았을까? 계속 다녀야 할까?"  한번 든 회의는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커지고 단단해진다. 


꾹꾹 눌러왔던 불만, 고통, 아픔을 밖으로 표출하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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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Conscious Capitalism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정한' 자본주의의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기업의 본질은 이윤추구가 아니며, 수익을 올리는 기업의 활동이 기업 뿐만 아니라 고객, 직원, 투자자, 협력업체, 공동체, 환경에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갖고 있는 장점이자 기업의 가치이며, 이것을 '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이라고 부른다.
깨어있는 자본주의는 도덕적인 기업이 되어야 한다거나, 좋은 일을 함으로써 성공한 기업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기업의 윤리적 책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CSR 활동과도 다르다.

저자는 기업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대해서 깊이 자각하여, 고차원의 목적, 이해관계자 통합, 깨어있는 리더십, 깨어있는 문화와 경영이라는 네가지 신조로 구성된 기업을 진정한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이라고 역설한다.
따라서, "기업은 가치를 창출하므로 유익하며, 자발적인 교환에 바탕을 두기에 도덕적"이며, 지금껏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그릇된 믿음'이 퍼져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지적 기반을 경제학자와 비평가들에게 내맡겨둔 탓이 크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수익이 아니라, 더 가치 있는 미션을 달성하기 위함이며 수익은 그 수단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사람은 밥을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기업은 수익을 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이쯤에서 대부분 무슨 꿈같은 헛소리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착한 사람은 사업하면 망한다'는 사고가 상식(?)처럼 퍼져있는 사회에서, 착하게 돈을 벌 수 있고(벌어야 하고) 그것이 자본주의 기업의 본질이자 추구할 바라는 얘기는 '망하기 딱 좋은' 생각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착하다는 개념은 순진하다, 멍청하다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착함은 똑똑함, 지독함, 게으름, 부지런함, 노련함, 성실함, 까칠함, 고지식함, 개방적, 유연함 등 다양한 성향과 결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근본적으로 도덕적이고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미션을 지향하는 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이며,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위라는 말도 함께 붙어 다닌다.

"우리는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착한 사람들은 꼴찌가 된다' 같은 근거없는 문화적 믿음을 던져버리고 조직과 리더가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조직과 리더는 인간이 지닌 최상의 덕목인 사랑과 배려를 구현해야 한다....물론 사랑과 배려는 탁월함과 결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약하고 무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돈을 버는가이다."

이렇게 '망하기 딱 좋은' 주장을 하는 몽상가는 누구일까? 
이 책의 저자인 존 맥키는 홀푸드마켓의 공동설립자이다.  홀푸드마켓은 미국의 유기농 자연식품 판매점으로, 연매출 110억 달러, 직원 6만 7000명이 넘는 대기업이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근본적으로 훌륭하고 윤리적인 체계인 자본주의를 제대로 인식하고 운영하자는 것이 깨어있는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만들고 연구소를 설립한 저자의 의도이다. 그리고, 그런 사상을 홀푸드마켓이라는 기업을 통해 증명해보였다는 점이 이 책의 주장이 갖는 무게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홀푸드마켓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에 동의하는 기업들과 함께 '깨어있는자본주의연구소'를 만들어 이러한 사상과 경험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사이트(http://www.consciouscapitalism.org/)에 접속하면 이 책에서 애기하는 철학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놓고 있다. 
또한 매년 열리는 Conscious Capitalism CEO Summit(올해로 8회째) 행사 스케치도 참고할 만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포스코가 이 그룹에 가입돼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란 책이 전세계적 신드롬을 불러오고,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도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1%을 제외하고는 99%의 다수가 불행한 현재 자본주의 작동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다. 그런 점에서, 착하게 돈을 벌 수 있고, 벌어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울림이 크다.

물론 과연 '진정한' 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의 활동 자체가 가치있고 도덕적일 수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적어도 나는 저자와 달리 자본주의 체제가 한계에 다다랐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기본적으로 그런 성격을 내장하고 있다면 기업이 국가를 대체하는 기업국가야 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하지만, 주어진 현실을 최대한 쓸만하게 고쳐 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기업가들을 적극 지지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실천에 동참하고자 한다. 자본이나 기업이 근본적으로 탐욕적이든 아니든, 진흙탕에서도 연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주장처럼 여전히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다. 아무리 휼륭한 미션, 좋은 가치를 지향한다고 해도, 그런 가치를 끝까지 밀고나가고 기업 문화로 각인되기 까지는 무엇보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로 모아지기 위해서는 권한은 가능한 넓게 퍼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닥을 닦는 사람이 빗자루를 선택"해야 한다.

"조직문화와 경영 방식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규율 기반으로 하는 군대식 문화가 있는 기업에는 지휘와 통제 중심 경영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와 달리 깨어있는 문화를 지닌 기업에는 분권화, 권한위임, 협업에 기반을 둔 경영 방식이 필요하다."

끝으로 깨어있는 리더의 자질에서 예로 들고 있는 타타그룹의 전 리더 JRD 타타의 말을 인용해본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대기업의 리더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저 직원들은 파업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 저렇게 서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시원한 음료를 갖다 주고 그늘로 자리를 옮기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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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성장은 리더십의 크기와 비례한다. 회사가 정체상태에 있거나 퇴보하는 것은 그만큼 리더십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그릇과 같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담을 수 있는 내용물의 양이 결정된다... 그래서 조직은 리더십만큼 큰다. '
( <보스가 된다는 것> 중에서, 신현만 )

이전에 근무하던 사무실 앞에 한 중국집이 있었다. 식사 때나 가벼운 회식을 위해서 자주 이용했다. 그 3년여 동안 서너번 주인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식당주인이 바뀌는 것에 따라서 손님이 늘고 줄어드는 것이 확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 주인은 항상 나비 넥타이에 깔끔하게 차려입고 식당 입구에 서서 손님이 올 때마다 깍듯이 인사했다. 항상 밝은 얼굴로 필요한 것이 없는지 챙겼고, 종업원들도 제대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서비스로 나오는 군만두 조차도 값싼 만두가 아니었다. 덕분에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로 만원을 이뤘다. 

그러다 원주인이 확장을 위해 가게를 넘기고 떠났고 새로운 주인이 인수를 했다. 그런데, 이번 사장은 자다 일어난 듯한 부스스한 머리에, 집안에 우환이라도 있는지 항상 심각하고 우울한 얼굴이었다. 계산을 담당하는 아내로 보이는 분도 마찬가지 표정이었다. 음식맛도 많이 떨어졌고 서비스 군만두는 굳이 말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았고, 그마저도 싸구려 냉동만두맛이 물씬 나는 것이었다. 결국 그렇게 몇달을 버티다 다시 가게 이름이 바뀌고 주인도 바뀌었고, 직전 사장때보다는 손님이 좀더 늘었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데도 사장의 마인드와 그릇에 따라 매출이 큰 차이를 보인다. 하물며 사업을 경영하는 회사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인이 근무하던 회사는 몇년째 매출이 100억원 근처에서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영업전문가였던 지인을 임원으로 영입했으나, 매출이 횡보를 거듭하고 있던 것은 영업과 마케팅, 개발 등 조직내 부서간 이기주의가 자리잡고 있었다. 즉, 단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부족한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런 문제를 제기해도 사장이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장이자 오너의 뜻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이 임원으로 포진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을 문제시하기 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매출을 늘리고 더 성장할 수 있는 방법론은 단순했으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회사의 성쇠가 단지 사장의 리더십에만 의존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업 아이템, 시장환경, 경쟁상황, 그리고 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조건, 좋은 아이템이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핵심에는 사장의 리더십과 그릇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실무자들은 이미 문제와 해결책을 알고 있지만 사장만 모르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독선이나 아집에 빠져 들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조직이 정체하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먼저 사장 본인의 리더십에 한계가 온 게 아닌지를 냉정하게 성찰하고, 주위의 객관적 평가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건강한 조직, 성장하는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은 건강한 기업문화이고,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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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아이템을 결정하고 회사를 만들어서 생존의 기반을 마련하는 초기 단계를 지나게 되면 꼭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것이 있다. 물론 이미 성장한 기업도 마찬가지다.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조직의 수장이 갖고 있는 성향이나 철학이 그 조직의 성격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사업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자. 오로지 돈!인지, 세상에 없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싶은 건지,  구성원끼리 적당하게 나눠가지며 꾸준히 오래가는 중소기업을 꿈꾸는지 등등. 이것은 사업과 일에 대한 관점이자 본인의 인생관과도 관계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아보자. 단순하게 구분해서 깃발들고 일사분란하게 끌고 나가는 스타일인지, 구성원간의 합의와 지원을 좋아하는 서번트 리더십 스타일인지 등등 
이 둘을 합치면 대략 경영철학과 기업문화를 끌어낼 수 있다. 거기서 다시 그런 조직에 맞는 인재상, 인사관리, 성과관리 등등이 나오게 되고, 기업문화를 형성하는 구체적인 태도나 습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절대 남이 하는 게 좋아 보인다고 따라가서는 안된다. 남들에게 좋거나 성과가 있다고 우리 조직에도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는 없다. 구글 본사를 직접 찾아가서 배우고 벤치마킹해서 우리 조직에 그대로 이식한다고 해서 구글같은 조직이 될 수는 없다. 

벤치마킹해야 할 것은 겉으로 보이는 업무 프로세스나 복리후생같은 제도가 아니다. 그것이 어떤 철학과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그것이 조직을 책임지는 사장인 나도 근본적으로 동의하고 신념화할 수 있는 것인지를 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색깔을 입힌 고유의 기업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일관성이 중요하다. 하나로 정렬하여 모순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사장은 매우 독불장군 스타일인데 창조적인 인재상을 내세우는 건 서로에게 시간낭비이고 정력 낭비이다. 그런 조직에는 창조적인 인재가 아니라 우직하게 시킨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돌쇠형이 맞다. 반대로 매우 개방적이면서 토론과 협력으로 조직을 끌어나가는 사장이 아무리 독재적인 스타일로 분장하려해도 한계가 있다. 

물론 조직운영에 필요한 디테일한 사항들이나 기술적인 것들은 항상 배우고 벤치마킹이 필요하고, 기업이 성장하는 단계에 맞춰 혁신과 개선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을 수시로 이리저리 바꾸는 건 사장과 조직에 대한 불신만 키우며, 의도한 만큼의 효과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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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멤버, 그 어려운 관계>

"어떤 나그네가 긴 여행 끝에 크고 넓은 강에 이르렀다.
강 너머는 평화롭고 아늑한 땅이 있었다.
나그네는 강을 건너기 위하여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나룻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갈대와 나뭇가지를 꺾어 뗏목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공들여 뗏목을 만든 다음 그것을 타고 무사히 강을 건넜다.
평화롭고 아늑한 땅에 도착한 나그네는 자신이 건너온 강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이 뗏목이 아니었다면 강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 이 뗏목이야말로
내게 큰 은혜를 베풀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자신이 타고 온 뗏목이 아깝게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무겁고 커다란 뗏목을 가져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그네는 무거운 뗏목을 어깨에 메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모두 비웃었다."
- <증아함경>

금강경에 나오는 저 비유가 창업 멤버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허름한 사무실, 좁은 오피스텔에서 서너명이 의기투합해서, 밥 대신 꿈을 먹고 돈 대신 에너지를 받으며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매출이 늘고 직원도 늘어난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더 흐르고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규모를 갖춘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고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접어드는 때가 온다. 그리고 그때쯤, 또는 이미 그 전 쯤에 전형적인 문제 하나가 생긴다. 
사장에게는 괴로움과 난감함, 직원에게는 불만으로 다가오는 문제. 바로 창업 멤버의 능력과 역량에 대한 문제이다. 

물론 창업 초창기 멤버들이 조직의 성장과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반면 조직은 성장했는데 창업 멤버들은 초기 업무 역량에서 크게 올라가지 못하고 맴도는 경우도 많이 있다. 초창기에는 보통 영업적 필요로 전 사원의 간부화, 임원화가 일어난다. 대부분 팀장, 부장, 이사 등의 직급을 달게 된다. 어쩔 수 없기도 하고 필요하기도 하다. 내용은 없지만 타이틀이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직이 커지게 되면 타이틀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그러길 기대하는 때가 오는 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이다. 
창업 멤버라는 프리미엄 덕에 임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임원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필요한 역량이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덧 매너리즘에 젖어 들고 업무는 관성적으로 수행한다. 
아래로는 똑똑한 직원들이 들어오는 데 정작 임원은 그들을 리드하기는 커녕 쫓아가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 벌어진다. 어느 순간, 초창기 멤버들이 조직 발전의 걸림돌이나 병목 현상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기 시작한다. 
더 큰 비극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은 다 아는 데 당사자만 모른다는 점이다. 

자리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고, 자세의 문제일 수도 있고, 기업 문화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타이틀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계속 그 조직에서 함께 하기는 매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해법은 있는 그대로 그 사실을 알려주고, 다시 창업 초기의 열정과 자세를 떠올리며 노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거나, 노력하더라도 한계가 보인다면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서로를 위해서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좋을 때 헤어지는 게 그마나 마음이 덜 상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조직이 어려운 상황이 되어서야 그동안 쌓였던 불만과 비난을 쏟아내 봤자 나아질 건 하나도 없다. 

당사자에게는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조직은 그동안 동맥경화로 고생했던 문제를 해결하며 미래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다. 
물론 본의아니게 조직을 떠나는 창업 멤버의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만, 최대한 예우를 갖춰서 그 마음을 달래주고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강을 건너게 해 준 고마운 뗏목이지만, 뗏목을 어깨에 이고 갈 수는 없다. 뗏목이 필요한 강가로 찾아갈 수 있도록 내려놓거나, 뗏목을 해체해 길을 헤쳐가는 용도로 재구성해야 한다. 
여기서 사장의 결단과 냉정함이 요구된다.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지에 대한 미안함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으로 곪게 놔두는 건 사장으로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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